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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Dec 25. 2023

나잇값 6 - 지인 아닌 친구들에게

오랜 벗들에게

세상 밖으로 나가는 모든 길이 막혔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가 서로의 보이지 않는 벗임을 잊지 말자




내 의지대로 선택한 인간관계는 부모도 자식도 아닌 친구인 너희들이야. 배우자와 할 수 없는 수많은 말들을 서로 의지하며 나누었지. 속상하고 부족한 점, 변덕스러운 감정,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 남편의 흉을 실컷 쏟아내고 나면 이상하게 진정이 되더라. 그건 너희들이 온전히 내편에서 공감하면서 얘기를 들어주었기 때문이야. 오은영, 서천석박사보다 더 잘 공감해 주고 시간도 장소도 상관없이 진심으로 들어준 너희들이 없었다면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었을까?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성탄에 새삼 너희들이 고마워. 우리는 제법 긴 세월 동안 인연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내었지. 각자의 짐으로 감당하기 벅찬 삶을 묵묵히 걸었기에 이제는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심전심을 느낀다. 삶이 고난을 줄 때는 억울했는데 그 고난 속에 성장했다는 말은 부인할 수가 없구나. 그 사이 아주 오랫동안 친구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지인이 된 이도 있었지. 내게 지인과 친구는 이렇게 구별되더라. 내가 어렵고 힘들거나 일이 생길 때는 관심이 없다가, 본인이 그런 일이 생기거나 심심할 때 연락해서 한참을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내가 겪고 있거나 겪었던 일은 알고 싶지 않은 채 본인 얘기에만 진심인 사람은 지인이야. 


재발한 암으로 살이 쏙 빠져 병원에 있는 긍정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자고 하느님과 부처님께 기도드리잖아. 자비의 신들이 부디 그 큰 자비의 손을 그 친구에게 펼쳐 보살펴주길 변함없이 함께 기도하면서 나는 너희들에게 너무 고마워. 병으로 지치고 외로운 친구를 위해 기꺼이 지금까지 함께 응원해 줘서 고마워. 내가 축복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온 우주의 기를 믿고 너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격렬하게 응원할게. 그래서 긍정이랑 따뜻한 날에 소박한 여행을 다시 한번 가보자. 그때는 이쁜 꽃이 피어있는 꽃길을 따라가 보자.


어릴 적에 나는 대단한 주인공이 나오는 책들을 읽으면서 성인이 되면 당연히 나도 달라질 줄 알았어. 교양도 풍부하고 변덕스럽지도 않고 고난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사람 보는 안목도 정확한 그런 사람이 될 줄 알았거든.  20대에는 경험을 좀 더 하고 30대부터는 그렇게 살 거리 기대했지. 30대에는 설마 40대에는 그렇게 살겠지 했어. 40대가 되니 내가 나를 의심하고 나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생은 대단한 실전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서 나 자신을 보았더니 고난에 ㄱ자만 나와도 놀라 자빠지는 연약한 인간이더라.


그러니 내가 너희들이 얼마나 필요하겠니? 놀라 자빠질 때마다 너희들이 도와줘야지 어쩌겠어? 더 이상 미주알고주알 내 얘기를 처음부터 다시 들을 친구 만들기도 힘들어. 그러니 올해처럼 모두 병원에 많이 가는 일이 없도록 서로 건강에 유념하자. 가정의 기둥이면서 누구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이 아닌 그냥 내 친구 땡땡이로 아무 때나 별 일 아닌 내 일로 스스럼없이 전화할 수 있게 오래오래 곁에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세네카가 돈보다 더 소중하다고 얘기한 시간이란 인생을 함께 나누며 삶의 길을 함께 걸어가 보자.


아무도 자기 돈은 나눠 주려 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인생을 나눠 주고 있는가요? 사람들은 재산을 지킬 때에는 인색하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는 너그럽지요. 시간에 관한 한 탐욕이 정당한데도 말이지요. - 세네카

서로에게 시간이란 자기 인생을 나눠주는 사람이 친구야. 누구의 험담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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