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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Dec 28. 2023

나잇값 7 - 내가 나를 돌볼 시간

나는 무언가에 압도되어 어찌할 바를 모를 때면 조용한 장소를 찾는다. 그럴 때 화장실은 놀랍도록 효과적인 공간이 되어준다. 나는 변기 위에 앉아 눈을 감고,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내 안에 존재하는 고요하고 아늑한 공간, 당신 안에도, 나무 안에도, 아니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그런 공간을 느낄 때까지 숨을 쉰다. 그러면 비명을 지르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찾아온다. 세상 모든 일의 경이로움에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하루 한 번, 상황이 좋을 땐 두 번, 나 자신에게 충분히 조용한 시간을 주려고 애쓴다. 아침 20분, 저녁 20분을 그렇게 사용하면 잠이 잘 오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나의 생산성이 힘을 받고 창조성에 불이 지펴진다. - 오프라 윈프리




브런치에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얼굴도 모르는 그분들이 삶의 한 순간도 게으르지 않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타인의 성실함과 치열함을 느끼고 나면 '나도 그래야지'가 아니라 이제는 '나는 안 그래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내 능력에 맞게 내 안에서 나오는 리듬에 맞게 살고 싶다. 나에게 여유를 주고 기다리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싶다. 채소가 몸에 좋다고 호랑이에게 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호랑이도 한두 번은 먹을 수도, 인간이 먹일 수도 있겠지만 길게는 서로에게 고통스러운 결말이다.


게을리 살려고 해도 게을러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부류이다.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든 부류이다. 남이 차려주는 밥보다 내가 차려먹는 게 편하고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더 속 편하다. 가만히 있는 연습, 내가 나를 기다려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왜 내가 이렇게 기다림에 약한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런 조급함이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마 나를 돌아볼 여유 없이 주변의 가족들을 돌보는 게 먼저라고 배워서 그럴 것이다. 어릴 적 병원에 계셨던 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늘 일을 하셨고 집안일을 하면서 본인의 힘듦으로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엄마의 따뜻한 한마디와 격려가 필요한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즉 사랑받기보다 야단 안 맞기가 우선이 되어 내가 할 일을 스스로 무리하게 찾아서 하였다. 엄마가 빨래를 하는데 누워 있으면 누워 있다고 야단을 맞았다. 방청소를 하면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고 아무튼 야단맞을 거리는 무수히 많았다.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엄마가 안정이 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엄마가 아버지 몫까지 힘들어서 그렇다고 무조건 이해해야 했다. 30대의 여자가 가정을 혼자 일구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나는 지금 엄마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절대권력 앞에 힘없이 있었던 나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엄마에게도 누군가 가르쳐 주어야 했다. 본인이 힘들다고 감정표현을 다하면 아이들은 더 힘들다는 것을. 그때 우리는 공간이 필요했다. 엄마도 혼자만의 화를 삭일 수 있는 공간, 나는 나대로 화가 난 엄마를 피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필요했다. 그 단독주택에는 빨래를 널고 장독이 있는 옥상이 있었다. 그곳이 내게 허락된 마음 편한 공간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우리 골목의 집들이 보이는 그 옥상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고 기분이 썩 좋아지진 안았지만 세상이 덜 갑갑했다.


어른이 되어 나도 자녀들을 키우면서 내 자식들에게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맘껏 화냈다. 같은 실수를 대를 이어하면서도 엄마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내가 굳이 엄마보다 나은 사람은 아니다.


마당이 있는 잡으로 이사를 하니 마당이 위로의 공간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이다. 새도 보고 꽃잎이 흩날리는 것도 하늘이 푸르다 못해 눈이 부신 날은 마음이 설레고 들뜨면서 행복해진다. 저절로 바뀌는 나뭇잎의 색상은 인생이 변화를 보여준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은 하루의 시작을 알려준다. 이제 공간은 확보된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보아 주는 공간. 그러니 이제 조금 더 나 자신에게 여유로워지자.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올 시간 나 자신과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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