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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Jan 16. 2024

둘리야 힘내라!

사랑하는 친구 둘리에게

며칠째 읽지 않는 카톡을 보며 톡방에 있는 우리들은 네가 어서 빨리 괜찮다고 응답하길 초조하게 기다려. 숨쉬기가 힘들어서 어떡하니.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톡이나 하며 너의 안부를 묻고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는 것뿐이라 스스로도 야속하다. 네가 어서 숨이라도 편히 쉬면 얼마나 감사할까.


오늘 너의 남편에게 문자가 왔어. 네가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나중에 상황을 알려준다고 왔더라. 눈물이 삐죽삐죽 나길래 내버려 뒀어. 도울 것도 없으면서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무슨 위로가 되겠니. 그런데 둘리야, 기도하는 내내 네가 고등학교 때 포동포동하던 그 모습이 떠올랐어. 곱슬머리에 안경을 끼고 과체중인데도 귀엽고 날렵하고 엉뚱했던 네 모습이 떠올라서 기도가 끝날 무렵엔 내가 기운이 나더라. 이 기운이 너에게 쏜살같이 가서 원인 모르게 걸린 코로나도 물리치고 양심 없는 암세포도 물리치길.


열일곱의 나이에도 세상을 많이 안다고 착각하던 시절, 나는 엄선해서 너를 내 베프로 정했지. 졸업하고 나서 인연이 이어지다 끊기다 이어지다 끊어졌어. 세상일에 별 관심도 없는 너는 그 흔한 안부전화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가지지 않고 혼인신고 하지 않았으니 보통의 친구들이 챙기는 피상적인 것은 당연히 하지 않았지. 그래도 그게 너니까 섭섭하지 않았어. 너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네가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안 쓰는 네가 너 다워서 익숙해지고 응원이 되더라. 그리고 너는 아주 멋지다.


작년 초에 미사를 마치고 몇 년 만에 너에게 전화를 했더니 암이 재발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지.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이게 뭔 일인지 내가 더 놀랐더니 너는 내가 전화해서 좋다고 했어. 그간의 경과를 간략히 얘기하며 4개월 시한부를 선고받았는데 다행히 잘 넘겼고 지금 많이 괜찮아졌다고 했었는데. 그러다 약에 내성이 생겨 다른 약으로 바꾸고 다시 항암을 하던 어느 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병원으로 너를 찾아갔었지. 너는 반쪽이 되어 있는데 목소리는 그대로였어. 따뜻한 날씨에 숙이가 모는 자가용을 타고 항암을 마친 너를 데리고 송도커피숍을 지나 초량 산꼭대기를 돌고 부산시내를 드라이브하던 그날 우리 모두 너무 행복했어. 이제는 미루지 말고 열심히 놀자고 다짐했는데 그 항암이 또 효과가 없어 이번엔 일차 항암을 한다고 했어. 건강한 세포나 암세포나 다 죽이는 일차 항암이 효과가 좋기를 바랐는데 부작용도 만만치 않구나. 


둘리야, 그래도 너는 이겨낼 수 있어. 왜냐하면 너는 그 힘든 투병 중에 징징거리지도 안 좋은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잖아. 그러기가 쉽니? 내가 늘 말했잖아. 나 같으면 주위에 섭섭하게 했던 가족들 가만히 두지 않는다고. 그런데 너는 항상 긍정적이라고 우리가 늘 칭찬했잖아. 그러기 쉽지 않다. 이번에도 병원을 믿어도 되냐는 우리를 네가 달랬지.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우리는 늘 긍정적으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너는 좋은 마음으로 버티는 게 최선이라면 우리 그렇게라도 해보자. 꽃피는 봄에는 조금 멀리 드라이브를 가보자. 저번에 갔던 간절곶은 좀 추웠어. 이번에는 경주가 어떨까? 한정식 맛집도 찾아두고 커피숍도 근사한 데로 알아놓을 테니 한 번만 더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부처님과 하느님이 도와주시길 기도할게. 부처님, 하느님 제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삼세번이라고 저희가 한 번 더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크신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리야 제발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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