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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Feb 23. 2022

10. 당근을 내 돈 주고 사 먹는 날이 오다니.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고작 현미쌀 하나 사 왔을 뿐인데, 마음이 스리슬쩍 달라졌다. 밥이 건강해지니 더 건강한 반찬이랑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랄까. 그치만 저번에 엄마가 챙겨 주셨던 봄나물을 반쯤 먹고(반은 상하고ㅠㅠ) 나니 온고잉 반찬이란 계란후라이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에잇, 뭔가 해봐야겠다 싶지만, 냉장고가 텅텅. 주말을 틈타 약속장소 주변 시장에서 첫 야채를 구매해보기로 했다. 먼저 보여드리는 결과물, 지난 글에서 던 찰현미로 차린 한 상이다.


 초보 도시 자취러의 시장 도전기. 처음에는 가격을 잘 몰라 일단 한 바퀴를 돌았다. 당근, 가지, 감자, 마늘, 양파, 봄나물, 완제품(?) 반찬 등등. 생각보다 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쓸 줄 아는 건 많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가격이 별로 써 있지 않았다. 마트가 아니지 참... 그리고 다 바가지에 팔아서, 한 개씩 파는지도 잘 몰라서 주저했더니 같이 간 친구가 1개씩 되는지 물어봐 주겠다고 했다.


 오케이, 그럼 마지막 1인분 남은 레드커리 페이스트 소진도 할 겸, 가지를 사자. 태국 가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지 1개, 저번에 뇨끼 하면서 다 쓴 양파도 1망. 뭔가 아무래도 세 가지는 사 봐야겠는데, 하고 고민하다 눈에 들어온  당근 1개. 다 해서 오천 원이 나왔다.


 손이 엄청 무거운 것에 비해 오천 원이면 저렴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평소 시장 주변에 살던 친구는 싸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집에 와서 보니 바가지에 있던 것과는 달리 사장님이 꺼내주신 가지가 조금 덜 싱싱하기도 했다. 그치만 뭔가 짊어지고 오는 길이 벌써 건강한 기분이었고, 첫 시장 구매 성공적 땅땅.


 일단 집에 와서, 저번 편 마지막에 살짝 보였던 밥을 차려 보았다. 남은 레드커리를 소진해야 하니까 일단 가지를 썰어 보고, 양파는 일단 커리에 안 들어가니까 패스. 당근은... 뭘 할까 하다가, 처음 목표였던 반찬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레시피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 당근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갈비찜에 들어있는 것도 먹지 않고, 무침 요리에 있어도 굳이 집어 먹지 않는다. 굳이 한다면 잡채에 들어간 정도나 먹을까. 당근 주스도 입에 대 보고 싶지 않아서 별로 먹어보지 않았다.


 나만 당근이 싫은 건 아니었는지, 당근을 단독으로 쓴 메뉴는 잘 나오진 않았다. 가장 많이 나온 메뉴는  당근 라페였다. 근데 이건 레시피에 홀그레인 머스타드가  들어간다는데, 집에 6년 된 소스밖에 없기도 했...어서 보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도대체 같은 소스가 왜 세 병이나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셋 다 6년이 넘었더라.


 고민하다가 당근 김치 떠올랐다. 당근 김치는 조금 생소하겠지만, 저번에 동대문 중앙아시아 음식점에서 먹고 맛있어서 이거다 싶었다. 강제 이주를 당했던 고려인들이 김치를 먹고 싶은데 마땅한 야채가 없어 당근으로 만들었던 김치라고 한다. 저번에 만든 태국식 생채인 쏨땀을 더 좋아하지만, 만들고 금방 먹어야 하기도 하고 파파야을 한 번 사면 쏨땀밖에 만들지 못해서 어렵기 때문에 손님 대접 할 때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근은 싸고 평소엔 손이 많이 안 가니까!


 와 근데, 봉지를 열어 보니 사장님이 어마어마한 걸 주셨다. 500ml 맥주 잔 만한 당근이라니. 일단 잘 씻고 껍질을 벗겨 반은 모르겠다. 일단 냉장고에 넣자. 그리고 언니의 홈쇼핑 강판 세트를 꺼내 갈갈갈. 팔이 아파도 갈갈갈. 기계를 쓰니 저번처럼 손이 주황색이 되는 건 막았지만 기계도 물들었다. 마지막 꼬다리는 가는 걸 포기하고 가장 작은 양파 하나 까서 다지기 기계에 같이 볶음밥용으로 잘라서 얼려 뒀다. 얼려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금방 먹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마트에선가 볶음밥용 채소 세트를 본 것 같아서였다. 제 쓸진 모르겠지만 뭐라도 되겠지.


 , 사용한 레시피는 당근 김치라는 키워드로 찾 낸 아래 레시피다.


http://https://m.blog.naver.com/sweet-mellow/222628793481


 역사랑 이런 저런 걸 잘 적어주시기도 했고, 비교적 상세해 보였다. 당근의 양이 반쯤으로 보여서 적혀있는 것의 반씩만 대충 넣었다. 마늘만 얼린 다진 마늘 큐브여서, 한 스푼만 뺄 수 없어 통째로 넣었더니 좀 마늘향이 많아진 것 같았어서 처음에는 맛이 이상한가- 싶었고 다음엔 다른 레시피를 써야겠다 싶었지만, 소분해서 다음 날 회사에 들고 가니 나쁘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에는 더 맛있었다! 첫 반찬이다. 단점은 먹어도 먹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 남은 당근 반 개는 또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상해서 버리지만 않으면 좋는데, 야근 시즌이 시작돼서 있던 재택도 내리 잘리고 있다. 집순이는 집이 보고 싶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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