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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Mar 07. 2022

16. 칼질은 어려워. 족발 볶음밥.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어느덧 16화나 된 소소한 자취생의 집밥 일기의 공통점 둘을 찾는다면, 고기가 없다는 것과 칼질을 최소화했다는 걸 들 수 있다. 여기서 오해를 하실 수도 있으나, 나는 병은 많으나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고기 포기 못해!


 그냥 이 요리 초보는 아직 고기를 만지는 건 무서워할 뿐이다. 가끔 고기가 먹고 싶을 때도 있는데, 마트에 가서도 영 고민만 하다가 온다(구워 먹는 고기도 외식 아니면 집에서 잘 먹지 않는다). 딱 한 번 직접 정육점에서 사 먹은 고기도 카레에 넣어 먹을 용도로 잘라달라고 했던 찌개용 고기였을 수준이다. 앗, 그나마도 집에 놀러온 친구가 카레를 해 줬었구나. 고기반찬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 하나는 맨날 재택할 때 뭐 먹냐고 물어보면 감자탕, 주물럭, 삼겹살 등등 온갖 고기를 먹는 것 같은데, 참 대단한 것 같다. 언젠가 꼭 해보고 글로 쓰리라 믿으며 숙원으로 남겨두고 있다. 지금은 대충 고기맛이 필요하면 집에 있는 소시지나 냉동 가라아게, 냉동 핫윙 이런 애들은 쓰고 있다. 막입이라 나는 잘 먹는데, 언니는 영 마음에 들어하진 않는 걸 보면 괜찮은 대체재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다른 한 가지는...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지만 영 에 익지 않은 칼질이다. 뭔가 요리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재료 준비에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버리니까, 지쳐버린다. 내가 하는 요리에서 주로 칼질은 양파를 썰 때 밖에는 잘 쓰이지 않고, 그 외는 거의 가위, 채칼, 만능 다지기 기계가 책임져 주는 것 같다. 특히 다지기 기계! 언니가 처음 살 때는 도대체 저런걸 왜 5만원이나 주고 사나 싶었는데, 막상 내가 요리를 시작하니 설거지는 좀 귀찮아도 웽~ 하고 모든 걸 그럴 듯하게 만들어주는 기특한 친구로만 보인다. 단점은 다지기 기계라 그보다 큰 조각이 필요할 때는 약간 아쉽다는 것이다. 그래도 볶음밥 만들 때 참 좋다. 안 해보긴 했지만 검색해 보면 죽이나 이유식 만들 때 많이들 쓰시는 것 같다.


 저번에 마음 먹고 한번 사과를 예쁘게 얇게 썰어 보려다가(껍질 깎는 것 아님) 손톱을 잘라버린 뒤로는 욕심을 버리고 먹을 만한 크기로 자를 만한 다른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많이 하면 칼질도 는다던데, 그 전에 돈을 모아서 잘라주는 기계를 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비병이 생기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다이소에서 계란후라이를 동그랗게 만들어주는 틀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 왔다. 실력을 키우기보다 자꾸 야매를 찾고만 싶다.


 오늘은 갑자기 코로롱 이슈로 재택을 하게 되었는데, 집 앞에 자가키트를 사러 나가서 보니 아파트에 월요장이 열려서 점심을 미니 족발로 언니와 둘이 잘 챙겨먹었다. 그래도 조금 남은 재료는, 큰 맘 먹고 뼈를 다 발라내고 칼로! 잘라서! 생고기는 아니지만 고기를 직접 잘라내 볶음밥을 만들어냈다! 인터넷 검색할 때는 다들 뚝딱 잘라내서 호로록 볶아들 내시던데, 내가 하면 이게 뭐라고 30분이 넘게 드는 건지.


최선을 다해서 작게 자른 족발. 사진은 왜 이리 커 보이지ㅜ

 퇴근을 하지 못하고 저녁시간으로 급하게 만들려다보니 양파까지 썰 시간이 없었지만, 내겐 믿는 구석이 있다. 오늘도 열일한 다지기 기계!

양파가 생각보다 커서 볶음밥에 2/3 정도만 넣고 나머지는 또 냉장고에 보관했다.

 사진은 단촐하지만 그래도 레시피는 요 정도였다.


1. 족발은 뼈를 발라 최대한 작게 썰어 두고, 양파도 썰어 둔다(다졌다).
2. 기름을 두른 팬에 얼린 다진 마늘 반 큰술 넣고, 자글거릴 때 얼린 대파를 대충 넣는다.
3. 마늘이 타기 전에 잘라둔 양파를 호로록 넣고 볶는다. 소금으로 간을 살짝 한다.
4. 양파가 익으면 썰어둔 족발을 넣고, 다져둔 버섯을 넣는다(야채 처리용).
5. 양념치킨 소스 한 숟갈을 넣고 볶다가, 밥 한공기 반 정도를 넣고 양념치킨 소스 1큰술, 삼발 소스 반큰술, 굴소스 1큰술로 간을 맞춘다.
6. 잘 볶아서 냠.


 양념치킨 소스는 언니가 쓰래서 꺼냈던 소스인데(좌측 사진), 이름은 달콤양념 소스지만 맵찔이인 나에겐 살짝 매웠다. 의사소통의 에러였는데, 언니는 남은 족발을 볶음밥이 아닌 볶음을 하는 줄 알고 꺼내 줬다고. 족발을 볶는데 자꾸 양념치킨 냄새가 나서 웃겼고 약간 새콤해서, 코키타 케밥 삼발 소스를 꺼냈다. 고기랑 무척 잘 어울리는 매콤한 소스인데(주로 찍어 먹음), 밥을 볶아 본 적은 없어서 소심하게 반 스푼을 넣었더니 향이 좀 더 바베큐스러워졌고 더 매워졌다...ㅜ 간은 아직 모자라서 소금을 좀 뿌리다가 언니에게 헬프요청을 했더니, 굴소스 한 숟갈을 넣으라기에 넣고 정말 맛있어졌다!

쨔잔 맛있었다!

 아직 간 맞추기는 영 어렵지만, 대충 볶음밥이 망하면 굴소스를 넣으면 된다는 걸 배운 날. 그리고 코키타 삼발은 이것저것 조합을 계속 찾아보고 싶다. 살짝 달짝지근 하면서도 매콤한 소스인데, 이게 또 특별히 어떤 소스랑 비슷하다고 말하기가 어렵긴 하다. 인도네시아 국민 소스인 삼발소스를 사다가 아시아마트 사이트에서 후기가 좋길래 같이 사 봤는데 맘에 든다! 비록 고기는 잘 안 해먹지만...ㅠ 올해는 그래도 꼭 고기요리를 더 해 먹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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