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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Mar 13. 2022

17. 확진자를 위한 야매 요리 (1)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2연속 밀접 접촉자가 되었다. 전날까지 같이 밥 먹고 야근하던 사수가 갑자기 두 줄, 곧이어 양성이 떴다. 주말에 본가 가기를 포기하고, 나도 PCR을 받아 놓고 언니와 함께 집에서 쉬었다. 음성이 뜨고는 안심하긴 했지만, 사수가 반찬을 뒤적거리던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려 일요일도 나가지는 않고 집에서 놀았다. 명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하게 잘 놀았는데, 월요일 출근길 언니가 갑자기 목이 아프다더니(나 밀접으로 재택이었다), 그래도 키트는 1줄이라 출근길에 사내병원을 들려본다더만 열이 38도라고? PCR 받고 온다고? 어어어 할 새도 없이 열이 38.8도 끓으면서 기침을 미친듯이 하는 사람이 되었고, 저녁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급하게 회사에 보고를 했으나, 일단은 어차피(?) 사수 때문에 다들 밀접 접촉자셔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바로 나도 PCR을 받고, 에엥 분명 목이 아픈 기분인데 음성. 요 쪼끄만 자취방에서 분리도 불가능한 두 자매의 동거가 시작됐다. 일단 내 양성은 그냥 씻어둔 목이려니... 싶어서, 아직 멀쩡할 때 아픈 언니 밥이라도 챙겨줄까 하고(평소에 둘만 있으면 요리는 언니가 책임져왔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나도 재택이라 바쁘기도 하고 한 번 하면 양조절이 어려워서 몇 끼치가 나오기 때문에 다양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챙겨 먹은 야매 밥상들을 자랑해본다.


...라고 태평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대환장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저장만 되어 있었다. 지난 글에 적긴 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던 당시의 내 마음까지 지우고 싶지 않아서 킵해 뒀다(분량 확보 겸. 하하). 아래는 분노가 살짝 가라앉은 뒤 메모삼아 남긴 내 불쌍한 코 수난기에 대한 글이다. 잠깐 붙여 본다, 하하.


https://brunch.co.kr/@ab32267baa19499/20





  

 언니의 확진 첫날 아침은 나름대로 능숙하게(?) 계란 후라이를 부쳐 내고, 본가에서 공수해 온 젓갈들과 언니가 지른 굴젓을 잔뜩 차려 냈다.  남은 밥이 생각보다 애매해서 언니는 햇반을 뜯었지만... 그래도 이 집에서 반찬이 이렇게 풍부한 날도 흔치 않아서, 나름 뿌듯했다. 그치만 앞으로 일주일(언니 확진으로 회사 지침상 같이 재택격리) 고민되긴 해서 PCR을 받고 오는 길에 약도 좀 사고, 먹을 것좀 사와야겠다 싶었다. 7,960원? 가지랑 아보카도를 산 건 맞는데, 뭔가 하나쯤 더 산 듯한 가격이지만 도대체 뭘 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니 친구의 서프라이즈!

   점심에는 뭘 먹지, 아직 반찬이 많으니 그걸 먹어야하나 하고 있었더니, 누군지 모를 천사님이 갈비탕과 불고기를 시켜주신 것! 알고 보니 언니의 오랜 친구가 걱정돼서 보내줬던 것이었다. 덕분에 점심도 걱정 없이 뚝딱 먹어치웠다. 갈비탕은 바로 다 먹었고, 먹다 남은 불고기는 냉장보관, 덜어둔 공기밥은 냉동실로 갔다. 언제 꺼낼지는 모르겠지만 두면 먹겠지 뭐.

사진용 언니거 요거트볼과, 취식용 내 요거트볼.

 아침에 검사를 받고 온다고 시간을 날렸더니, 일은 많은데 시간이 훅훅 갔다. 앉아만 있었는데도 묘하게 허기가 져서, 낮에 사 온 딸기 등등과 함께 직접 만든 그릭요거트로 과일볼을 하나 만들었다. 언니가 이 정도면 밥이 아니냐고 했지만, 시리얼을 넣지 않으면 밥이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미리 잘라서 냉장보관한 바나나와(그래서 조금 색이 별로라 가렸다) 용과, 딸기와 하루견과 한 봉지씩 들어갔다. 언니가 나보다 바빠서, 언니는 거의 2시간 내내 먹은 것 같았다...ㅠ 아니 사람이 열이 38도가 넘는데, 저 부서도 참 너무하다- 싶다. 그치만 언니도 나도 업무 대체자가 없어서 그냥 슬퍼하면서 야근했다.

점점 늘어가는 계란후라이!

 어느 정도 일이 정리가 되는 늦은 저녁, 그래도 밥은 먹고 약은 먹여야겠다 싶어서 남은 족발볶음밥에 계란후라이를 얹어서 나눠먹었다. 사진은 집중하느라 찍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 후라이팬에 두개를 한 번에 부쳐서 각 밥그릇에 나눴다. 뿌듯뿌듯. 나도 이제 계란 두 개 가능한 사람...! 이제 다른 것도 하긴 해야 할 텐데, 하고 계란말이 레시피를 기웃대다가, 조금 익으면 말고(?) 새로 계란물을 뿌리고(?) 하는 영상을 하나 보곤 학을 뗐다. 이건 아주 머나먼 목표로 남겨야 할 것 같다.

  다음 날은 선거날이라 둘 다 늦잠을 잤고, 느즈막이 아점을 준비해 봤다. 남은 젓갈을 활용한 명란 파스타 설욕전! 저번에 후배가 조언해 준 대로, 양파도 더 작게 썰고 방울토마토도 생으로 잘라 넣었다. 전날 세일 코너에서 집어 온 아보카도도 야무지게 잘라 봤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서 슬펐다. 간이 살짝 안 맞았어서, 언니가 맛을 좀 보더니 굴소스 한 숟갈을 더 넣으라고 했고, 순식간에 맛있어졌다! 코로나 걸리면 미각을 잃는다더니, 아직인가다. 그래도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제목에 비해 요리라곤 계란 후라이 밖에 안 나오다가, 드디어 첫 요리(?) 스러운 게 나왔다.


< 명란 파스타 만들기 >


1. 대충 물 1리터에 파스타 2인분쯤 넣고 소금을 한 움큼 넣고 끓인다. 막판에 남은 면을 다 때려넣었더니 나중에 양이 좀 많았다.

2. 마늘로 기름을 내고, 양파를 볶는다. 맛소금을 살짝 뿌린다.

3. 양파가 익을 쯤에 자른 명란을 풀면서, 방울토마토들을 대충 반을 잘라 넣고, 냉동 그린빈도 훌훅 털어낸다.

4. 삶은 파스타면을 팬에 넣고, 면수도 반 그릇 정도 마음 편하게 붓는다. 굴소스 한 숟갈 반을 같이 푼다.

5. 호로록 볶아내고 내놓으면서 명란, 아보카도를 얹어 코디한다.

6. 싱거우면 명란을 한 입, 짜면 아보카도를 한 입 먹으면서 간 조절!


 따순 브런치였고, 어쩐지 많은 재료를 써서 더 건강한 느낌이 들었다. 양조절을 실패해서 오후에 간식을 또 챙겨먹게 된 것은 미스지만, 꽤나 괜찮게 챙겨먹은 것 같다.

남은 게 거의 1인분이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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