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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Mar 15. 2022

18. 확진자를 위한 야매 요리 (2)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선거날 아침, 명란파스타를 해 먹고 소화시킬 겸 언니가 시켜먹고 싶다는 딸기케이크를 사러 동네 카페(라기엔 나름 30분은 걸어가야 하는)에 다녀왔다. 빨간날이라서 그런지 카페거리에 사람이 진짜 많았다. 나름 유명한 카페라 혹시 품절이면 어쩌지, 하고 카페를 갔는데, 럭키. 딱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서둘러 포장을 기다리며 계산을 하려는데, 한 걸음이 모자랐던 다음 손님이 낭패 어린 표정으로 문 안쪽 케이크 코너를 들여다보다가 들어오시는 걸 봤다. 죄송하지만 이 친구는 아픈 온니 겁니다... 하하. 별 것도 아닌데 묘하게 신이 났다.

라스트 피스!!!!

 가벼운 발걸음으로, 잠시 새로 생겼다는 카페에서 코코넛 커피를 사갈까 고민하다가, 아픈 사람한테 커피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패스하고 집으로 바로 갔다. 누워 있던 언니가 벌떡 일어나 신나게 먹어서 기분이 좋았다. 케이크를 먹던 언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아빠가 오는 중이라고 전화가 왔다고 한다. 여길 온다고? 1시간 반은 걸릴 텐데? 얼굴도 못 보는데? 원래 아빠랑 엄마가 오기로 했던 날이긴 했지만 언니 확진으로 취소를 했었는데, 반찬이랑 약들을 바리바리 싸서 문 앞에 두고 가신다는 것이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갑자기 반찬 부자가 됐다.

 야호. 갑자기 반찬 부자가 됐다. 메로구이와 깐쇼새우(이건 다음날로 미루고), 상추대 무침(추정), 시금치, 가지나물, 꽈리고추무침! 집에 있던 김치랑 다 꺼내 두니까 든든한 한 상이 됐다. 메로구이는 원래 주말에 서울 가면 우리 해주시려던 건데 우리가 다 못 와서 챙겨주신 거라고. 아빠는 멀리서 와서는 차 안에서 내 얼굴만 좀 보고 가셨다, 흑흑.


 부모님이 주신 반찬을 담고, 언니가 우유랑 딸기가 모자라대서 사오고 나니 순식간에 냉장고가 꽉 차서 집에 있던 재료들을 좀 써야했다. 급하게 만능 다지기 기계로 사과를 다져서, 저번에 실패했던 사과잼에 재도전했다.


 전자레인지 사과잼 만들기
1. 사과를 다진다. 잘게 다질수록 쉽게 된다.
2. 전자레인지에 대충 이삼분 돌려서 물기를 만든다.
3. 물기가 생기면 설탕을 사과의 1/3정도 넣고 잘 섞었다가, 다시 2~3분씩 상태를 보면서 계속 돌린다.
4. 총 7~8분 돌리랬으나 식감 취향에 맞춰 정지하고, 식혔다가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다져서, 전자렌지에 데우고 설탕을 넣는다.
최종본!


 집에 꿀이 떨어져서 그릭요거트를 먹을 때 설탕을 넣을 수도 없고- 하다가 떠올라서 만든 사과잼. 설탕은 원래 잼을 만들 때는 일대 일이랬지만, 금방 먹을 거고 단 걸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서 적당히 넣었다. 레몬즙도 넣으면 좋댔지만 딱히 내키지 않아서 생략했다. 혼자 먹었다면 시나몬도 넣었겠지만, 언니가 싫어해서 이것도 생략. 다 만든 사과잼은 냉장고에 밤새 넣었다가, 다음날 요거트에 넣어 먹었다. 맛있었다.

새로 사 온 딸기와 전날 만든 사과잼을 넣은 요거트볼

 그렇게 자가 격리 6일차의 날이 밝았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아무리 전날 미세먼지가 많았다 해도, 자기 직전 목이 슬그머니 따갑기 시작한 게 아침에 일어나니 침을 삼키지 못 할 정도가 된 것이다. 걱정돼서 자기 전에 타이레놀을 먹고 잤더니 다행히 열은 심각하지 않다. 바로 능숙하게(매일 쟀다) 자가키트를 해 보니 오메, 두 줄이다. 생각보다 그렇게 희미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임신테스트도 아니고 두 줄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날이 올 줄이야...

  부서에 보고하니 당장 PCR을 받으래서, 더 아파지기 전에 후딱 9시 20분 검사를 예약해서 아침 업무를 조금 보다가 나갔다. 가는 김에 언니가 전낫 비대면 진료로 받은 처방전으로 약국 앞 상자에서 비대면 처방약 수령도 했다. 확진자가 넘쳐나서인지 선거날이어서인지 퀵이 어려웠어서, 아직은(?) 미확진자였던 동생 찬스를 썼다. 확진 4일차까지도 열이 38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언니를 위해 교차투약용 덱시부프로펜도 두 통 같이 샀다.


 난 주 토요일이 주말이어서 사람이 적었던 건지, 아니면 그 때는 첫 타임이어서 적었던 건지. 예약을 했음에도 한참 기다려서 검사를 받았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추운 곳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 망할 비염환자의 코는 또 막혀 있었고, 엄청나게 아팠는데도 깊게 들어가는 느낌이 안 들었다. 무엇보다도, 정책이 변경되었는지 목은 검사하지 않고 코만 찌른 것이다. 영 찝찝했지만 일단 집에 와서 어제 남은 반찬으로 점심을 차려냈다.


반찬 그릇이 한 개인 사유는, 이제 둘 다 양성이라서..ㅠㅠ

 아마도 동네 반찬가게 출신인 듯한 깐쇼새우는 생각보다 매웠어서 손이 잘 안 갔지만, 단백질을 위해 계란과 함께 중화시키면서 챙겨 먹었다. 입이 짧은 편인 언니는 두 끼 만에 벌써 반찬들이 질린다고 했지만, 엄마가 본죽 통으로 하나 가득(우리 집에선 이게 나름 단위인데, 우리 집만 그런가?) 각 반찬을 챙겨 주셔서 상하기 전에 먹어야 했다. 상추대로 추정되는 반찬 말고는 그래도 먹을 만 했는데, 나는 상추대는 약간 느끼해서 이후로는 먹지 않았다. 나중에 비빔밥에나 넣어 먹어야 하려나?


 몸 상태가 점점 급격히 나빠졌지만 아직 확진 문자도 없고, 일이 정말 많아서 쉴 틈이 없었다. 그나마 전날 빌린 27인치 모니터 덕에 능률이 높아져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주말 내내 야근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저녁은 먹고 일해야겠다 싶어서 전날 해동해 둔 비장의 무기 스지찜을 꺼내서, 맥반석 구이 계란과 같이 데워서 반찬들과 함께 내오는데, 문자가 왔다.


어쩌구저쩌구 코로나 상기도 검사 결과,
음성입니다.

 

 자가키트가 두 줄이었는데, 음성이라고? 이게 말이 돼? 밥을 앞에 두고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혹시 자가키트가 고장인가 하고 다른 회사 키트를 꺼내서 재도전했다. 아침보다 훨씬 선명한 두 줄이 즉시 나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맘에 검사자가 했던 것처럼 코만 다시 찔렀다. 와, 거짓말처럼 아무리 기다려도 결과는 한 줄. 어쨌든 그래도 자초지종을 보고하고 다음 지령을 받아야겠다 싶어 회사에 보고했더니, 코로나 담당자에게 물어봐준다시던 부서 분께서 분개하시며 연락이 왔다.


어쨌든 PCR검사가 자가키트보다 당연히 전문성이 있는 것이니, 네가 잘못 쟀을 거래.
정 못 믿겠으면 병원가서 신속항원을 받고,
의뢰서를 받아 다른 곳에서 PCR을 다시 해. 가급적이면 오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연락하고 기다리면서 밥 먹다가 진짜 맛있는 스지찜을 놓고도 무슨 누룽지 넘기듯 훌훌 넘기고 혈압이 오르는 상태로, 폭풍 검색을 했다. 여긴 서울이 아니고, 어지간한 병원은 6시면 다 닫는다. 선별 진료소도 5시에 닫는 판에 저녁에 어디서 받는다 했는데, 네이버에 8시 반까지 하는 신속항원/PCR 다 하고 목까지 검사해준다는 병원이 있어 후다닥 정리하고 차를 얻어타고 나가봤다.


 반전은 예전에는 PCR을 하다가 최근에는 신속항원만 한다는 것. 그래도 친절한 선생님 덕에 1시간 반을 기다리고, 코와 목 각각을 검사하고, 약도 처방받아 오고, 그리로 다시 차를 돌려 PCR을 받고 왔다.


 자세한 분노유발 스토리는 요 글에서 볼 수 있다.

https://brunch.co.kr/@ab32267baa19499/20


이름을 잘라냈더니 무슨 감성사진 같다. 위가 목, 아래가 코.

 일을 때려치고 갔다 왔더니 찐 밤까지도 일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재택 눈치 엄청 주는 부서에도 큰 문제 없게 검체 채취일이 동일하게 양성이 떠서, 보고했던 격리일에 변동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 이렇게까지 회사를 위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사수도 확진된 마당에 임산부인 선배에게 이것저것 부탁하기도 어려워 차라리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이제 확진자와 부양자 2인 가족은 확진자 2인 가족이 되어, 발을 잃었, 부양자가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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