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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Mar 18. 2022

19. 확진자를 위한 요리...아닌 삼시세끼(3)

서른 살, 밥은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이 글에 요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죄책감이 조금 든다. 왜냐하면 나머지 날들은 대부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킨 배달 음식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내가 아파서 부활한 언니와 바톤 터치하여 해 주는 밥을 주로 먹었다. 그치만 (야매)만 빼면 주어만 언니로 바꾸면 확진자(나)를 위한 요리가 되니까 제목은 유지해 봤다ㅎㅎㅎ


 나는 집순이치고는 나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특히 걸어다니는 걸 좋아한다. 강제로 잃게 된 자유에 괴로워 할 틈도 없이, 검사하러 다니느라 야근으로도 부족했던 시간이 더더욱 모자라 결국 주말까지 일을 하게 됐다.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는 게, 심심하지는 않았으나, 요리할 정도의 여력은 없었다(이 말을 위한 빌드업!). 히히 이런 사유로, 대애충 아침만 시리얼을 챙겨 먹은 우리는 점심에 플렉스하여 배달을 시켰다! 이제 둘 다 확진자니까, 같이 먹어도 되니까.

 

이 집에 이사왔을 때부터 언니가 가고 싶어했던 식당이지만, 결국 배달로 먼자 맛 보게 되었다.

 피자  라자냐와 양갈비. 서비스로 온 샐러드까지 흔히 먹지 못하면서도, 배달에 불지 않을 만한 메뉴들로 열심히 시켜봤다. 대충 봐도 알겠지만 양이 참 많았다. 주말까지 두고두고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ㅎㅎ. 배달비가 5500원이나 해서 조금 손이 떨렸지만, 둘이 전철타고 가도 왕복이 6천원이니 전철탔다 치고 사 먹어 봤다. 언젠가 꼭 가서 파스타도 먹어야지. 파스타 맛집이랬다. 라자냐는 언니는 그냥 그렇다며 양갈비만 좀 뜯었다. 그래도 양갈비에 있는 크림소스가 정말 맛있었다.


포장해서 한 시간을 달려 오신 아부지의 사랑

 저녁에는 남은 것들을 먹으면 되겠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빠가 집 앞에 음식들을 두고 가겠다며 오는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1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거리를(편도 1시간반) 그것도 차 막히는 금요일 오후에 딸내미 좋아한다고 이름도 잘 모르는 뿌팟봉 커리와 똠얌꿍, 팟타이를 사들고 오신 아부지ㅜㅜ... 문 너머에서 손짓으로만 인사를 하시곤 다시 돌아가셨다. 차에 바로 실어서 와서 그런지 아직 따뜻했다. 언니와 바로 업무를 중단하고 조금 이른 저녁을 챙겨먹고는, 같이 챙겨주신 홍삼액과 쌍화탕(앗 사진이 없네), 그리고 어머니가 챙겨주신 꿀까지 야무지게 챙겨먹었다. 감샤합니다ㅠㅠ.


  다음날 아침은 주말답게 늦잠으로 패스...가 아니라, 본격 아프기 시작해서 일어날 수 없었다. 금요일에 늦게까지 일한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조금 살아난 언니가, 양갈비 소스 양파, 버섯, 가지를 추가하여 리조또를 해 줬다. 사 먹는 것만큼 맛있었다. 역시 우리집 수석 쉐프! 먹고 힘을 내서 다시 일하는데, 언니가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 친구에게 점심을 보낸 답례로 수플레 팬케이크가 왔다. 오고 가는 고급진 정 사이에서 덕분에 포식을 했다.

 

 저녁은 굳이 사진을 올리기엔 보기가 좋지 않아 패스. 남은 배달음식들을 처치하기 위한(?) 자취생들의 만찬이었다.


 


 다음 날 아침도 역시 늦잠 후 아점으로,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을 소진하기 위한 우리 집 수석 쉐프의 브런치 메뉴였다. 제대로 튀긴 팔라펠과 남은 구운 감자, 반숙란, 방울토마토, 방울양배추,  양파 및 치아바타를 한 번에 처치하면서도 건강해 보이는 그릭요거트 소스를 이용한 밥상이었다. 맛있었다! 나는 아직 이런 정도의 응용력이 없어서 언니가 멋있었고, 그 동안 내갸 챙겨 준 밥상이 약간 부끄러웠다.


 그래서 저녁은 나름대로 폭풍 검색해서 직접 만들어봤다. 처음에는 가지 라자냐를 검색했는데, 라자냐는 (당연하게도) 라자냐 면이 필요했고, 우리 집엔 그게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건 가지 라자냐였고, 나름대로 레시피가 할 만해 보여서 따라해봤다.

1. 가지를 최대한(?) 얇게 썰어서 오븐에 180도 7분을 누른 채로 넣었다(예열 없이)
양파랑 닭가슴살 소세지를 잘 다져서 볶다가, 토마토 소스를 투입해서 같이 볶은 후
그라탕 그릇 및에 채워넣고 가지를 얹도 치즈를 뿌린다.
저번에 먹고 남은 으깬 감자에 우유, 후추, 소금을 넣고 잘 섞은 뒤 감자 한 층, 다시 남은 볶은 야채 한 층, 가지를 놓고 치즈를 콸콸
짜잔~ 완성이다.

 삼색 피자치즈를 쓰니까 조금 꼬릿하긴 해도 비주얼이 나쁘지 않다. 단점은, 나중에 모자라보여서 치즈를 더 넣었더니 과하게 짰다는 정도? 적당량을 중간중간 층층이 쌓아 주면 더 맛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지난번 감자그라탕보다는 훨씬 씹는 맛도 나고 완성도 있어보여서 좋았다.


 삼일간의 식사를 열심히 다 적었는데 한 요리가 하나뿐이라서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미각을 잃지 않아서 맛있게 잘 먹고 일할 수 있었던 주말이었다. 미리 일한 덕에 월요병도 없었다는 웃픈 사연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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