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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야 Mar 20. 2022

20. 홀로 남은 확진자의 망한 방울 양배추 구이

서른 살, 밥은 제대로 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언니의 자택 격리가 해제됐다. 나와 3일 차이가 났으니까, 나는 아직 더 남았는데, 언니네 부서는 바쁘다며 칼 같이 사람을 출근시키더니 기어이 10시 반이 넘어서야 퇴근시켰다. 꼭 챙겨먹으라고 쥐어 준 약들은 한 알도 줄지 않았다. 새벽에 자다가 기침을 미친듯이 하길래 꺼내서 챙겨줬는데, 이러다 사람 죽겠네. 사람이 아침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갈려나가면 하루에 1.5인분은 하고 있단 소린데, 이게 지금 서너달 째 주 3회 이상 반복된다면 부서에 한 명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저기도 참 고되어 보인다.



 어쨌든 나름대로(?) 부양해야 할 언니가 사라지기도 했고, 남 걱정할 틈 없이 나도 바빠져서 밥을 점점 대충 떼우기 시작했다. 있는 반찬과 과일을 대충 와랄라라, 약 먹게 배만 채우면 되지 뭐, 하고 두 자매는 같이 막 살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목이 아프다는데 자꾸 전화로 일 시키는 사람들은 뭔가 하고 분노하면서 전화를 받아대다가, 카톡도 몇 시간에 한 번 챙기기를 반복하다보니 착한 친구가 밥 제대로 먹고 있냐며 프레즐을 배달시켜줬다.

탐탐의 이탈리안 프레즐과 크림치즈 프레즐. 전자렌지 돌려 먹으면 더 맛있다.

 내 방부제 알러지의 증상은 목이 붓는 것인데, 코로나의 나름의 장점은 어차피 하루 종일 목이 붓기 때문에 약간의 아픔이 더해져도 모른다는 것이었다ㅋㅋㅋㅋ 자학개그 같지만 덕분에 평소에 먹고 싶어도 자제하곤 하던 치즈덕후는 치즈빵들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치즈, 밀가루 모두 방부제라..ㅠ)! 덕분에 기운을 내서, 저녁에는 꼭 요리를 해 먹어야지 싶었다.


망한 방울 양배추 구이


 예전에 매드포갈릭에서 스테이크와 함께 왔던 브뤼셀 스프라우트 구이. 튀김이었으려나? 고추와 함께 바삭하게 익혀 나왔던 맛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서 열 개 좀 넘는 양에 사천 원이 넘는데도 큰 맘 먹고 질러봤다. 아니 도대체 다갈다갈 한 줄기에 많이씩 붙어 나온다면서 이 가격은 무언가. 마음이 아팠지만 더 오래되기 전에 먹어야지 싶어서 열심히 레시피를 찾고 꺼내왔다.


<레시피 출처 - 구글링>

https://www.wellplated.com/sauteed-brussels-sprouts/

 어쩐지 우리나라 블로그들에는 내가 먹었던 바삭바삭한 느낌이 없어보여서, 구글링하다 찾아 온 방울양배추구이 레시피는, 레시피 자체는 쉬워 보였다. 재료도 거의 다 집에 있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료들

 우선 재료는 이 정도.


반으로 자른 방울양배추들 1파운드(약 450g)

올리브 오일 2큰술

코셔솔트 1/2 티스푼, 후추 1/4 티스푼

발사믹 식초나 레몬주스 1큰술

1~2 티스푼의 (익히지 않은) 잣(또는 호두, 아몬드, 피칸 등)

파슬리(혹은 고수, 민트 같은 허브) 다진 것


 만드는 법은 아래와 같다.


1. 커다랗고 튼튼한 바닥을 가진 튀김 냄비를 4분 정도 중불로 달구다 올리브오일을 넣고, 오일이 달궈지면 타기 전에 팬을 휘저어 바닥 전체에 묻힌다. 그리고 반으로 잘라 둔 방울 양배추들을 팬에 넣고 잘 섞어서 최대한 잘린 평평한 부분이 바닥에 닿도록 만든다. 5-8분 정도 가만히 두어 카라멜화가 되도록 기다린다.


2.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나무 스푼이나 스파츌라로 잘 섞어준다. 방울 양배추의 모든 부분이 갈색이 되고 속까지 익을 때까지 6-8분 계속 저어 준다.


3. 팬을 불에서 떨어뜨리고, 발사믹 식초를 넣어 잘 섞으면서 잣이나 아몬드 등을 넣는다. 잔열로 견과류의 모든 면이 타지 않고 익도록 매우 빠르게 젓는다. (익지 않으면 불에 잠깐 다시 댄다) 견과류가 다 익으면 접시에 두고 잘게 다진 허브를 얹어 먹는다.


 하, 이론은 완벽했는데. 일단 열심히 씻은 방울 양배추를 반으로 잘 갈라놓고, 레시피 1번 대로 팬도 달구고 오일까지 입힌 뒤에 넣었는데, 비상- 비-상!!! 기름이 미친듯이 튄다. 온 주방이 난리가 났다!!!!! 이걸 어쩌지 하다가 간신히 싱크대 밑에서 뚜껑을 찾아서 덮어놓고 다급하게 주방 벽이랑 온갖 데를 다 닦았다. 긴팔 옷을 입어서 데이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5분 알람을 일단 맞추긴 했는데, 뚜껑 사이로 보이는 낌새가 좋지 않아 1분 먼저 뚜껑을 열고 보니 벌써 좀 탄 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멈출 순 없어서 소금과 후추를 넣고 일단 다시 4분 정도를 더 익혀봤다. 최대한 더 타지 않게 계속 흔들었지만 음... 더 탔다. 하하.


 이걸 도대체 먹어도 되는 것인가 하면서도 일단 아는 레시피는 저것 하나 뿐이니 발사믹 식초랑 땅콩 분태를 대충 넣고 마저 섞어봤다. 흔들리는 내 마음처엄 흔들리는 저 초점이 내 모든 걸 대변하는 듯했다.

 

처참한 플레이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플레이팅. 지금와서 보니 허브도 뿌리지 못했다는 걸 번역하면서 알았다. 최대한 칼로 잘라가면서 먹었더니, 거의 검은 부분이 반쯤 된 듯했다. 남은 부분 사진도 올려 보려다 비주얼이 영 아니라서 삭제했다. 이걸 4천원 주고 샀다고 했더니 언니가 2천원어치 먹었네, 라고 뼈를 때렸다. 아, 맛에 대한 얘기가 별로 없던 이유는 탄 맛이 많아서 썼기 때문..^.^......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나보다 요리를 잘 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양배추에 물기를 안 뺐냐고. 물기가 닿아서 미친듯이 튀기고, 기름이 모자라니까 탄 것 같다는 것이다. 언니가 우리집 팬은 그렇게 두껍지 않은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다고 했다. 물기를 빼고 재도전을 해 보라는데, 이미 재료도 없고 너무 놀라서 한동안은 다시 건드려보고 싶진 않다. 하더라도 오븐구이로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큰 야채는 꼭... 물기를 다 빼고 볶아야겠다. 너무 무섭고 상상했던 맛이 하나도 재현되지 않아서 슬펐다. 내 사천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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