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야 Mar 25. 2022

모두가 아픈 시기

아픈 네 옆에 아픈 내 옆에 아픈 쟤

 어제 옆 파트 선배가 회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 파트의 모두는 눈치를 봤지만 아무도 다가가지 않고 이내 자리를 비웠다. 괜한 우리 파트원들만 눈치를 보다가, 쭈뼛쭈뼛 가서 안아줬다. 선배네 상사가 지금 선배를 콕 찍어서 괴롭히는 중인데, 다들 외면하면 그만이니 그냥 두는 거다. 예전 회사에선 내가 저렇게 울었는데, 거긴 여직원이 많아서 화장실 가서 울고 있으면 친하든 친하지 않든 선배들이 달래줬었고 난 그게 그래도 삶을 연명하는데 도움이 됐었다.


 그치만 여기는... 눈치가 잘 없으신 내 사수는 잘 모르시지만, 여직원 중에 가장 큰 파벌 쪽이랑 선배는 사이가 좋지 않고 오히려 수근수근대고 계셨다. 다른 회의실에 문 닫고 들어가서 시시덕댄걸 보니 한 입 안주거리가 됐겠지. 그 밑의 유일한 막내인 나만 양쪽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눈치를 보며) 둘 모두와 교류하고 있어서, 나만 선배를 달래줬고 다들 나에게 선배한테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를 캐내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사람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걸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사람을 피말리면서 그럴 수 있는 자신의 권력에 쾌락을 느끼는 걸까.


 나를 죽고 싶도록 폭언을 일삼던 그 새끼도 잘만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비슷한 상황만 봐도 몸이 굳는다. 내가 위로를 한다고 나아질 일이 아닌걸 알면서도, 저러다 죽겠다 싶어서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퇴근하고 나서는 친구가 오늘 일과 중 울었다며 얘기를 들려줬다. 거기는 둘씩 짝을 지어 일하는 직종인데, 신입이랑 짝이 되었는데 신입이 혼자는 커녕 둘이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사고를 계속 치고, 하는 말은 듣지도 않고, 방금 말한 것도 바로 틀리고, 결국 욕받이가 되고 야근을 하게 되는 것은 내 친구라는 것이다. 친구도 이직 후 두달째라 사실 그 회사에선 신입이나 마찬가지인데. 실 친구도 호의로 도와줬던 건데, 자꾸 뒤통수를 맞고 정도를 넘어선 업무량으로 돌아오니 사람 자체가 증오스러워 보인단다. 친구 편을 들어 그 신입을 같이 헐뜯으면서, 역시 착하면 호구된다는 말을 하면서, 이렇게 나도 인간성을 잃어가는가 싶었다.

어른이라는 게 막 으른이고 멋지고 자기 몫을 해 내고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그냥 내 몫만 하고 싶어하고 빼앗기기 싫어하는 애들이 딱딱한 가면과 벽을 잘 세워서 버티고 있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퇴근길에는 큰언니와 같이 왔는데, 퇴사를 해야겠다고 한다. 나는 아무래도 현실적이어서 그래도 좀만 더 버티고 이직으로 넘어가지,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럼 또 한소리 들을 것 같아서 말았다. 작은 언니가 옆에서 그래 그냥 때려쳐. 라고 외쳐서, 나는 못 할 것 같을 때 저런 극단적인 소리를 들으면 그것도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 서둘러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그냥 들었다.

 

 격리된 몇 주 동안 카톡에서 푸념으로만 들었었는데,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다.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작정하고 텃세를 부리는데, 상사 앞에서만 협조하는 척 하고 실상은 가르쳐주는 게 하나도 없고, 앞에선 웃다가 메신저로 욕하는 걸 눈으로 본 뒤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단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 같다. 술이나 먹자고 했는데 입맛도 없다고 아무 것도 안 들어간다고 한다. 좀 더 지나면 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실 세 달이면 거의 한 학기인데 내가 왕따를 당했던 한 학기가 엄청 끔찍했단 걸 생각하면 많이 버틴 것 같기도 하다.


 왕따 같은 건  나처럼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사람만 당하는 줄 알았는데, 선배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그냥 좀 더 권력이 많은 쪽에게 몰아붙여지면 한 순간인 거다. 여기서 권력이란 건 사람이 많아 권력일 수도 있고 그냥 말 그대로 고과나, 인사권 같은 권력일 수도 있고... 어쨌든 당사자에게는 그냥 지옥이지, 뭐.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일일이 다 관여할 수도 없는 것도 맞는데, 마음만 계속 무겁다. 다들 참 많이 힘든 시기인데. 도움은 안 되고 같이 우울만 하다 정리도 되지 않지만, 내가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도 잠을 자면 희석될 것 같아서 적어 본다. 내일은 주말인데, 다들 웃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밀접에서 확진까지, 우당탕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