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결혼에 대한 꿈을 많이 그려보았다.
막연하게나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만나
의지하며 평안한 결혼생활을 하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지금의 나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을 만나
내가 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의지하며 살고 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나는 친구들 6명과 자격증 취득을 위하여
학원을 다녔다.
상업고등학교 특성상 취업을 위하여 부기자격증과 전산자격증을
따기 위한 것이었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집에 들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채
바로 학원으로 향해야만 했다.
학교에서 학원까지는 버스로 이동하여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아무리 점심도시락을 배불리 먹고 학원을 향해도
학원수업을 마치면 늘 허기졌다.
점심도시락을 부실하게 먹는 날이면 학원 수업 전
편의점에 잠시 들러 꼬들하게 익힌 컵라면을 먹고 수업에
들어 기가도 하였다.
하루 2-3시간 동안의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해는 이미 저물고 배속에서는 꼬르륵 소리만 요란하게 났다.
거의 매일 학원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아지트처럼 근처 햄버거집에
모였다.
수업 특성상 같은 학원을 다녔어도 친구 6명이 모두 끝나는 시간은 달랐다.
부기반과 전산반 자격증 종목이 달라 우리들은 수업이 끝나는 대로
우리만의 아지트에 모였다.
아지트로 모이면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한 세트씩 주문하여
나머지 친구들이 올 때까지 배를 채우며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늘 1-2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는 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학교수업이나 학원수업, 선생님들과 있었던 일 들...
연예인 이야기며 남자친구 이야기, 결혼 이야기, 다이어트 이야기...
그때 당시 유행하였던 것 중 하나가 [분신사바] 게임이었다.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늘 마지막은 분신사바였던 것 같다.
게임의 주제는 늘 연애와 결혼이었다.
누구 한 명이 연습장과 펜 하나를 책가방에서 꺼내면 끝이었다.
두 사람이 펜 하나를 가운데 두고 같이 손을 맞잡으면,
우리는 질문 세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웃긴 건 남자친구도 없던 나는 늘 비슷한 질문만이 가득했다.
'올해 남자친구가 생길까요?'
'몇 살에 결혼을 할까요?'
'남자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있나요?'
늘 비슷한 질문이었지만 무엇이 그리 즐거웠던지
질문을 던져놓고 펜의 움직임을 기다리다 보면
늘 숨죽이다가도 또 배꼽 빠지게 웃기도 많이 웃었던 기억이 가득하다.
질문에 대한 답은 웃기게도 늘 이랬다.
'올해 남자친구가 생길까요? -> 아니요'
'몇 살에 결혼을 할까요? -> 스물여덟 '
'남자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있나요? -> 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너무도 신기하다.
어찌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펜과 손이 움직인 것 일테다.
사람의 의지가 상황을 만드는 것 일테다.
나의 꿈이 만든 작은 의지는 소소한 게임에서도 머물다 갔다.
그 시절 그리던 결혼에 대한 꿈은 이루었다.
나는 지금,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사람을 만나 5년의 연애를 하며
내가 원하던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결혼생활을 시작하였고,
또한 많은 것들을 의지하며 평안한 결혼생활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