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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고등학교 2학년, 학급 임원이 되다.

by 신언니



오랜만에 서랍장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고등시절 추억과 마주했다.


빛바랜 상장과 임명장들..

펜으로 꾹꾹 눌러써서 자국이 선명한 생활기록부에 성적표까지도...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잡은 건 두장의 임명장이었다.


초. 중. 고 모든 학창 시절을 합하여 임명장이라 부를 수 있는 상장은

고등학교 2, 3학년에 받았던 임명장이 전부였다.


남들 앞에서 당당히 말을 잘하지 못했던 나지만

어느새 학급 친구들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을 선물해 준 시간들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일명 체육부장이니 미화부장이니 하는 학급임원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한 학급당 4명의 학급임원이 학기 초에 선출되었다.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그중에서도 나는 회장의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학생회장의 자리는 아니지만

그 누구보다 학급회장의 자리가 나에게는

특별한 자리였다.



학급임원의 역할은 이러했다.


반장과 부반장은 교과 수업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맡았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각 과목 선생님들의 내용을 전달하거나

이동수업이 있으면 체크하여 준비물 등을 챙기고

실험수업이 있으면 주의사항을 전달하며

과목별로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많은 것들을 도우는 역할이었다.


회장과 부회장은 학급 특별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맡았다.

학기 초 학급별 환경미화기간이 오면 학급 내 시간표 및 게시판을 꾸미고

학급 친구들의 건의사항 등을 정리하여 회의 안건으로 올리기도 하고

총학생회에서 이야기 한 사항을 체크하여 학급구성원들에게 전달하며

학급에 필요한 이런저런 필요사항 등을 챙기는 역할이었다.




학급에서 회장과 부회장이 크게 활동하는 시간은

주 1회, 6교시와 7교시에 있던 일명 특활시간이었다.

수업시간 종이 울리면 나와 부회장은 칠판 앞에 나와

담임선생님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이번 주 주제의 안건들을 칠판에 적으며

바로 학급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어느 날은,

청소담당을 정하는 방법과 자리이동을 정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또 어느 날은,

학교나 학급에 대한 건의사항을 제시하여 토론을 하였다.

그러다가 가끔, 정말 어렵고 난해한 의견들로

혼자 회의를 진행할 감당이 되지 않을 땐

말을 잘하던 부회장과 역할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런 날이면 부회장이 회의의 전체적인 진행을 맡고

나는 칠판 앞에 서기로 서 있었다.

그렇게 회의들을 진행하다 보면,

담임선생님께서 급히 처리해야 할 일로 함께 하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친구들이 회의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계속 자신의 이야기로 떠들기도 많았다.

또, 건의사항에 대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회의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다음 회의시간까지도 연달아 이어가야 하는 상황도 만들어졌었다.

수많은 변수들을 안고 학급 친구들 앞에 서게 되면

말을 잘해야지 하지 않아도 술술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하굣길 나의 발걸음은 들뜬 꼬맹이 발걸음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2년을 학급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고등학교 1학년,

말이 많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던 조용한 한 아이가

운동회 날 치어리더로 활동을 하면서 미처 본인도 발견하지 못한 모습들을

2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이 끄집어 내 준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아직도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어렵다.

삼삼오오 모이는 아주 작은 지인들과의 대화는 편하다.

가끔 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너무 부럽다.



그러나 살다 보니,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가 종종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교 그 시절,

차마 스스로도 발견해내지 못했던 나의 작은 모습들을

끄집어 내 준 친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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