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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고등학교3학년, 직장이 생기다.

by 신언니



고3 학년말 교실의 공기는 차갑다.

사방이 얼음산으로 뒤덮인 공간에 혼자 덩그러니 서있는

기분마저 들게 하기도 하다.


고3 교실의 공기는 1학기와 2학기가 확연히 달랐다.

모순되는 모습이 이어진다.

따뜻하고 활기찬 공기로 가득했던 1학기의 모습은

차갑고 어두운 공기로 채워지며 2학기의 모습이 된다.



열심히 자신들의 진로를 고민한 친구들은

1학기 말이 되면 대부분이 진로를 어느 정도 정하게 된다.

학교추천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려 하는 친구들과

공무원시험을 보겠다며 또 다른 시작을 하는 친구들,

상업고를 들어왔지만 대학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해 다시 수능공부를 시작하는 친구들.

그렇게 자신들의 진로방향성을 잡은 친구들은 2학기가 시작되기 전 여름방학부터

차츰 각자의 길을 내딛기 시작했다.


1학기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교무실 3학년 담당 선생님들은 어수선하다.

선생님들 사이로 매일 출석도장을 찍는 학생들 모습이

마치 도떼기시장과 같았다.

공무원준비를 하려는 친구들은 공무원학원을 등록하여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진학을 하려는 친구들은 수능학원을 등록하여 다니기 시작했다.

교무실로 출석도장을 찍는 친구들은 직장생활을 하려는 친구들인 것이다.


은행,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차츰 학교로 채용공고가 들어오면

선생님들은 그 회사와 맞는 학생들을 추천하려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생활기록부를 다시 점검하며 학생들은 담당선생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방법부터 면접질의에 대한 준비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움직이는 것이 없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계속해서 수정하며 보완해나가야 했고,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몰라 면접준비는 아주 꼼꼼히 해나가야 했다.


그렇게 1학기 여름방학부터 시작되는 일과들은 2학기가 되어도 이어져갔다.

수업 중에 교무실에서 호출을 하면, 수업 과목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비웠다.

채용공고에 따른 서류전형일정과 면접전형일정이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되어갔다.

가끔 그렇게 수업 중에 호출되어 자리를 비우는 친구들이 나는 부러웠다.

그러다가 못내 자책도 하기 일쑤였다.


고3 12월 겨울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교실은 휑했다.

나를 포함하여 10명 남짓에 불과한 친구들만이 교실을 지키게 되었다.

2학기 기말고사도 치르고 수업진도도 다 마치고 나면 과목선생님들은

자율학습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내가 좋아했던 국어선생님은 가끔 복도를 지나가시다

자율학습이라는 명목하에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하시곤

조용히 앞문으로 들어오셨다.

너희들도 얼른 취업을 해야 할 텐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툭 내뱉으시곤

조용히 가시던 길을 가셨다.

그 말이 가슴 아프게 들려올 때도 더러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고3 생활은 가혹하다 느껴지리만큼

간혹 취업을 위해 미리미리 쌍꺼풀수술을 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고3 생활을 꽉 채운 후 졸업 일주일을 남기고 취업을 할 수 있었다.

사실 고3 생활 내내 어떻게든 취업은 하고 졸업을 할 것이란 자신감에 두려움은 그다지 없었다.

그랬던 내가 겨울방학을 코앞에 두고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는 시간은 가슴 졸이며

교무실을 자주 찾았다.

두세 차례 이력서 검토를 받으며 제출한 서류전형은 다행히도 잘 통과하였다.

얼마가 지나자 선생님의 호출에 교무실로 향했다.

면접을 남겨두고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 가지 주의사항들을 일러주셨다.

아직도 면접을 보러 갔던 그날이 생생하다.

집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던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갔었다.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재학생이라 복장은 단정한 교복차림이었다.

다행히 면접시간을 여유롭게 남겨두고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도 긴장한 탓인지 회사가 위치해 있던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향해 거울 앞에 섰다.

잘 나지 않던 땀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두 볼은 빨개져 있었고 입술을 바짝 말라있는 모습이었다.

부랴부랴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붉어진 얼굴도 진정시켰다.

그렇게 무사히 면접을 볼 회사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만약 취업을 한다면 직속상사가 될 것 같았던 여성분이 맞아주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 또한 나처럼 상업고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던 분이셨다.

어떤 질문이 오고 갔었는지 사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면접시간이 짧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단 한 가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면접 내내 덜덜 떨던 기억만 생생하다.

면접이 끝나기가 무섭게 배가 아파왔다.

또다시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자신의 배설물로 영역표시를 하는 동물들과 흡사한 내 모습이 웃겼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배출하고 건물을 나설 수 있던 나는,

그제야 긴장은 걱정으로 변했던 것 같다.

면접을 다녀온 이후 결과를 기다리던 며칠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은 듯 신나게 지낼 수만은 없었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담임선생님 편에 합격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졸업을 일주일 남겨두고 첫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취업을 하고 졸업식장을 올 수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첫 회사에서 나는 5년을 생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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