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 고등학교2학년, 국어 선생님을 꿈꾸어 보다.

by 신언니



국어선생님을 꿈꾸어 본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책 읽기를 싫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글쓰기는 좋아했다.


그런 나는 고등학교2학년 때, 국어담당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맞이하면서 아주 잠깐이었지만

국어선생님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어릴 적 엄마가 동생과 서점을 데리고 가면

한자리에서 끝까지 책을 읽던 동생과는 달리,

나는 그저 눈길을 끌던 책 표지에만 관심이 많아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런 내가 현재에도 글 쓰는 것이 좋은 것은

마냥 신기한 일이다.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과목이

내가 잘하는 과목이 아니란 걸 알았다.

국어과목이 그러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과목이라도 성적표를 받으면

늘 만족하는 점수가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어른들은 늘 책을 많이 읽으라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책 읽기와는 담을 쌓아갔다.


그럼에도 국어과목이 싫어지지는 않았다.

꾸준히 공부했고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국어시간은 즐거웠다.

특히,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에는

경필 쓰기와 글짓기 수업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를 때도 있었다.


성적과 무관하게

나에게 고등학교2학년 담임선생님은 아직도 가끔씩 떠올리는 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국어과목 담당이셨다.

학기 초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께 잘 보이리라 맘먹던 시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리 좋은 만족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을 바라보며 열심히 했던 순간은 생생히 생각이 난다.



어쩌면 지금도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 담임선생님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때 당시, 지금의 내 나이쯤 되셨던 담임선생님은

통통하지만 뚱뚱하지는 않은 체격에

늘 단정한 무채색 정장차림으로 적당한 높이의 구두를 신고 다니셨다.

말하는 모습은 차분하고

아무리 언성이 높아져도

시끄럽다 느끼지 않을 목소리에

몸짓과 손짓 또한 과하지 않았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칠판 앞 자신만이 정한 행동반경 안에서 차근차근

설명하시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직접적으로 선생님께 좋아한다 표현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 조금은 아쉽다.


선생님의 모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이 있다.

종례시간에 인사를 하다 보면 가끔 선생님의 눈이 빨개져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 남몰래 많이 우셨나 싶은 정도로 퉁퉁 붓기도 했더랬다.

빨개진 눈을 한 선생님의 모습을 본 날이면,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들은

수군수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추측하기 바빴다.

그러나 정말 답답한 친구 한 명이 조례시간이 돼서야 눈에 대해 물으면

실핏줄이 터져서 그랬다 말씀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시험문제 출제와 이런저런 행사들로 바쁜 시간들이 있는 날이면

늘 그러셨던 것 같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5,6교시에 국어수업이 있는 날에는

노곤노곤 친구들은 졸음과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언성이 높지 않아 차분한 목소리는 귀를 간지럽히기도 했더랬다.

그런 날이면 선생님은 눈치를 살피시곤

재미있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듯 수업을 진행시켜 나가셨다.

손자 손녀 앞에서 옛날 옛적에 하던 추억의 이야기처럼 좋기도 하였다.

그런 선생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그 모든 이야기들이 수업내용과 무관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엔 역사 속 인물이 되기도 하였고

또 어느 날엔 상상 속 나라에 놀러 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몰입을 하여 듣다 보면 어느새 종이 울리며 수업을 마치게 되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도록 뒷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주겠다

약속하시면 그다음 수업이 기다려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담임선생님이자 국어선생님이 좋았다.

그래서 나도 국어선생님을 잠시 꿈꾸어 보았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담아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나는 종이 위에 글씨로 꾹꾹 눌러 담아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고등학교2학년 담임선생님 덕분인지도 모른다.

keyword
이전 13화13. 고등학교 2학년, 학급 임원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