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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스물셋, 사회초년생 연애를 시작하다.

by 신언니



2002년, 나의 일상에 작은 떨림이 시작했다.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썩이니

나의 일상이 떨리기 시작한 것만은 아니다.

월드컵은 미끼였을 뿐

조금은 지루한 나의 일상이 작은 떨림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다니던 회사는 격주근무를 했다.

근무를 하는 토요일이면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과

맛난 점심약속을 잡기도 하고

함께 한강나들이도 갔다.

비슷한 또래의 남녀 직장동료 모임은

꽤나 재미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나갔다.

한창 자전거와 인라인에 빠진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임을 결정한 후 오후모임을 추진하였다.

한창 한강에서 자전거와 인라인으로 몸을 쓰고 나면

무조건 저녁모임까지 이어졌다.

월드컵 경기가 치러지는 주말이면

특히나 더더욱 저녁모임은 중요했다.

경기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섭외하느라 바빴다.

우리는 다시 회사 근처 자주 찾던 식당에 자리를 잡고

밤늦도록 파이팅을 외쳤다.

술을 마시러 모인 것인지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러 모인 것인지도 모르게

흠뻑 취한 우리는 함께 했다.


우리는 월드컵이 끝나도 자주 모임을 갖었다.

그 자리에는 늘 남편이 함께 있었다.

직장동료 모임 속 남편의 모습은 재미있었다.

함께 자전거도 타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인라인 또한 남편이 알려주었다.

직접 자신의 인라인을 한번 신어보라며 내주었다.

어릴 적 타보던 롤러스케이트와는 너무도 달라 어려웠다.

처음에는 직장동료 모임에서 막내였던지라

친절히 가르쳐준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직장동료 모임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인가 나를 데리고 동대문시장 나들이를 가자 하였다.

데리고 가 직접 신겨보며 나에게 인라인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계기로 자주 한강에 나가 인라인을 타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끼리만 함께 하기도 했고

다른 친한 직장동료들 모임에 끼어 있기도 했었다.


그 해 여름,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직장동료 몇몇은 우리가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회사에서 입 밖으로 내뱉으며 아는 채 해주지는 않았다.

우리도 또한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어

소문이 많아지는 것이 싫었기에

굳이 사귄다 안 사귄다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먼저 퇴근을 해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는 날,

남편이 야근이나 외근으로 늦게 끝나고 시간이 맞으면

학교 앞에 마중을 나오기도 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학교 건물에서 나와

남편이 반겨주면 피로도가 풀렸다.


가끔 딸아이는

아빠와 엄마 중 누가 고백했고, 어떻게 사귄 건지 묻곤 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의 술 취한 떨린 목소리를 기억한다.

늦은 밤, 집 앞으로 찾아와 차 한잔 하자며 불러냈다.

부랴부랴 집 근처 아직 닫지 않은 카페에 들어 가

수박주스 두 잔을 시켜놓고

한참을 말없이 마주 앉았다.

늦은 시간이라 카페 안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공기가 어색해질 무렵 남편의 취기 오른 떨린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말을 서로 나누었는지 대화의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떨린 음성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카페에서 얼마동안 머물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카페에서 나란히 나설 뿐이었다.

그렇게 나란히 동네 몇 바퀴를 돌았다.

조용히 걸었다.

헤어질 때쯤 마주 잡은 손으로 우리는

수줍은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

그렇게 사회초년생이 시작한 연애생활은 현재의 결혼생활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잘 꾸려진 결혼생활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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