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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른, 커피가 좋아 또 다른 꿈이 시작되다.

by 신언니



스무 살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치열한 사회구조 안에서 회사생활을 하며 부단히 달려왔다.

소리 없이 경쟁해야 하는 그 구조 안에서 나는 나의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

힘차게 달려도 보고, 천천히 걸어도 보고, 그러다 잠시 숨을 고르기도 반복하면서 나를 완성시켜 나갔다.

나의 이십 대와 나의 삼십 대는 아쉬움이 남더라도 후회 없는 삶이 되도록 채워나갔고,

그 안에서도 나는 막연하게나마 사십 대 이후 새로운 중년의 꿈도 가지게 되었다.

일을 하다 잠시 충전이 필요한 순간 찾게 되는 카페 공간에 머물며, 처음에는 조그마한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회사동료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멋있게 커피를 뽑고

디저트를 만드는 직원들을 보며 “마흔 이후에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었다.

그렇게 막연히 시작된 꿈은, 커피와 빵을 좋아하는 나에게 점점 더 선명해져 갔었다.


재작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을 들여 작성해 본 'CAFE PORTFOLIO' 첫 장의 문구이다.

다시 한번 노트북에 저장해 두었던 'CAFE PORTFOLIO' 파일을 열어보았다.

이 파일을 작성하면서 했던 나의 생각들을 다시금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서른에 느꼈던 나의 마음도 어렴풋이 끄집어내 보았다.

이미 나는 서른의 나이에 마흔 이후의 삶을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크게 그려보았던 것 같다.




회사에 몸 담고 있던 그때의 나는, 아침 출근길 아무리 시간에 쫓기더라도 회사가 아닌 근처 카페로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다.

오늘 하루 또 고생할 나를 위해 스스로에게 카페인을 선물했다.

나는 라떼를 좋아했다.

한동안 바닐라라떼에 푹 빠져 살았던 적도 있었지만, 꾸준히 나는 카페라떼에 마음을 쏟는다.

"라떼 나왔습니다." 주문한 커피 한잔이 픽업대에 놓인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와 고소한 우유가 자연스레 섞여있는 것이

지하철 안 사람들에게 치여 일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피곤한 마음을 기분 좋게 해 주었다.

계속되는 야근에도 쉬지 못하고 아침 정상출근을 하는 날이면,

머리는 무겁다 못해 나도 모르게 멍해진 채 발은 카페로 걷고 있었다.

시급하게 커피수혈을 받으며 회사출근도장을 다시 한번 찍고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하루 평균 커피 세 잔은 달고 살았던 것 같다.

출근길 한잔, 점심식사 후 한잔, 회의시간에 또 한잔.

그렇게 내가 있는 자리엔 늘 커피와 함께였다.


나는 아직도 라떼를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카페에 가서 주문하는 메뉴는 단 두 가지뿐이다.

'ICE카페라떼'와 'HOT카페라떼'이다.

어쩌다 딸아이와 자연스레 장례식과 제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이야기한다.

" 엄마 장례식이나 제사상에는 꼭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 놓아줘야 해!"

딸아이와 장난 반 진신 반으로 알았다고 한다.



회사생활을 그만두면서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이었다.

우선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커피와 함께하는 공간이 좋아 자연스럽게 나는 카페를 찾아 머무는 시간을 점점 많이 만들고 있다.

일부러라도 시간을 만들어 카페를 찾는 계획을 세우곤 한다.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는 나는 또 자연스레 커피와 함께하는 일상을 기록하며

하나하나 아직 펼치지 못한 중년의 꿈을 단단히 다져나가고 있다.


중년의 꿈, 커피가 좋은 나는 서른부터 또 다른 꿈이 시작되었다.

중년의 꿈, 뚜렷하진 않아도 언젠가는 커피와 함께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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