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장롱면허 10년, 이제는 내 삶의 핸들을 직접

by 그저 나


퇴사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천장의 고요함이었다.


5년 동안 나를 깨운 건 알람 소리가 아니라

두 대의 전화기수백 장의 차트,

그리고 오늘도 혼자 응대해야 할 환자들이었다.


긴장이 일시에 풀리자

몸은 기다렸다는 듯 무너졌다.


배수구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 뭉치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절벽 끝에

서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적응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오후 5시가 되면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며

‘아직도 퇴근까지 한참 남았네’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내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하게 웃곤 했다.


“나 정말 고생 많았구나.”


가족들과 1박 2일 여행은 꿈도 못 꾸고,

남편과 주말 브런치를 즐기는 평범함조차

내게는 사치였다.


많지 않은 월급을 위해

나는 청춘의 주말을,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나의 건강을 통째로 반납했었다.


두 달째가 되자

마음속에 작은 여유가 싹트기 시작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여유가 생기니 10년 동안 장롱 속에 묵혀두었던

‘운전면허증’이 눈에 들어왔다.


내 인생의 핸들을

나를 속였던 사람들에게 맡긴 채,

그저 끌려다니기만 했던 지난날들이었다.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내가 원하는 속도로 직접 가고 싶었다.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수없이 버텨냈고

전세 사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였다.


도로 위의 경적 소리는

치과 진료실의 날카로운 드릴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고 처음으로 혼자 도로에 나선 날,

창틀로 밀려 들어오는 바람은

그 어떤 보상보다 달콤했다.


나의 30대는 그렇게,

내가 직접 잡은 핸들과 함께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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