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천장의 고요함이었다.
5년 동안 나를 깨운 건 알람 소리가 아니라
두 대의 전화기와 수백 장의 차트,
그리고 오늘도 혼자 응대해야 할 환자들이었다.
긴장이 일시에 풀리자
몸은 기다렸다는 듯 무너졌다.
배수구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 뭉치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절벽 끝에
서 있었는지를 실감했다.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적응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오후 5시가 되면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며
‘아직도 퇴근까지 한참 남았네’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내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허탈하게 웃곤 했다.
“나 정말 고생 많았구나.”
가족들과 1박 2일 여행은 꿈도 못 꾸고,
남편과 주말 브런치를 즐기는 평범함조차
내게는 사치였다.
많지 않은 월급을 위해
나는 청춘의 주말을, 가족과의 시간,
그리고 나의 건강을 통째로 반납했었다.
두 달째가 되자
마음속에 작은 여유가 싹트기 시작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삶.
그 여유가 생기니 10년 동안 장롱 속에 묵혀두었던
‘운전면허증’이 눈에 들어왔다.
내 인생의 핸들을
나를 속였던 사람들에게 맡긴 채,
그저 끌려다니기만 했던 지난날들이었다.
이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내가 원하는 속도로 직접 가고 싶었다.
“할 수 있을까?”
겁이 났지만, 수없이 버텨냈고
전세 사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나였다.
도로 위의 경적 소리는
치과 진료실의 날카로운 드릴 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운전대를 잡고 처음으로 혼자 도로에 나선 날,
창틀로 밀려 들어오는 바람은
그 어떤 보상보다 달콤했다.
나의 30대는 그렇게,
내가 직접 잡은 핸들과 함께
다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