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치 청구서를 던지다
전세 사기라는 거대한 파도를 넘고 나면
온전한 평화가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집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내 몸이 이미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5년 동안 유능함이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속에
나를 가둬두었던 이 병원이,
사실은 나를 가장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의 일터는 여전히 1인 4역을 요구하는 전쟁터였다.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계단식 2, 3층 병원.
나의 하루는 2층 대기실에서 보호자를 안내하다가
3층 진료실로 뛰어 올라가 차트를 건네주고,
다시 2층으로 내려와 울려대는
두 대의 전화기와 컴퓨터 두 대를 동시에
혼자 돌려야 했다.
남들은 쉴 때 혼자 전화 응대를 하느라
점심시간조차 반납했고,
겨울에는 층간을 오르내리던 내 발에
자연스럽게 동상이 걸려 있었다.
대상포진은 덤이었다.
“선생님께서 일을 너무 잘해주셔서 든든합니다.”
원장님의 그 말은 훈장처럼 들렸지만,
그것은 사실 **‘가스라이팅’**의 다른 이름이었다.
매번 힘이 들어 인력보충을 요청했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며 단호히 거절당했다.
그렇게 유능할수록 인력 보충의 기회는 멀어졌고,
매년 연봉 협상 때마다 10만 원 인상이 전부였던
내 가치는, 어느 날 신입의 눈물에 무너져 내렸다.
고작 1년 차인 신입이 힘들다고 나가겠다 울자,
원장님은 단숨에 그녀의 연봉을 나보다 40만 원이나 높게 올려주고 사람까지 더 뽑아주겠다며 공고를 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독하게 버틴 5년의 세월은,
원장님에겐 그저 ‘저렴하고 튼튼한 부속품’의
유효기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미 두 번의 처절한 직장 실패를 겪고
세 번째로 온 이곳에서마저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로 버텼지만, 이제는 나를 놓아줄 때였다.
“원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결혼을 핑계로 퇴사를 통보한 뒤,
나는 마지막까지 나를 이용하려던 이들에게
우아한 복수를 준비했다.
2주 동안 신혼여행을 다녀온 내게
동료들이 내민 건 고장 난 인쇄기와
‘선생님이 대신 해결하라’는
퇴사전날까지의 무책임한 떠넘김이었다.
나는 당황하는 대신 미소 지으며
다음날인 퇴사 당일 원장실로 직행했다.
“원장님, 제가 신혼여행 간 사이에 사고가 났는데
두 선생님께서 2주 동안 보고를 못 하셨더라고요.
제 퇴사 당일이라 당황스럽지만,
제가 기사님 섭외까지는 마쳐두었습니다.”
실장과 후임의 굳은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한 장의 서류를 원장님께 더 내밀었다.
지난 5년간 점심시간도 없이 일했던 노동에 대한
정당한 수당 청구서였다.
결국 나는 원장님에게 타 지역 본가까지
오는 화환과 축의금, 그리고 미지급 수당까지
단 한 푼의 오차 없이 정산받아냈다.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5년 간 곤두서있던 긴장이 풀리며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나갔다.
억울하고 서글펐다.
고작 이 돈 몇 푼과 정산을 위해
내 청춘과 건강을 다 바쳤던가.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결혼이라는 도피처로 숨었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도망이 아니었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인 방에서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사람에게, 왜 품위 있게 걸어 나오지 않았냐고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나는 이제야,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나를 버리지 않는 법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