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hailey
2005년생 우리 딸 헤일리는 나에게 하나뿐인 아이이다.
한국에서만 공부를 했고 외고에서 IB디플로마 과정을 하고 싱가포르 국립대중 한 곳에
2024년 8월에 입학을 했으니 올해 4월말이면 1학년을 마치는샘이다.
1년이란 시간동안 아이가 혼자 먼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지켜보고 도와주며 느끼는바를
싱가포르 유학을 생각하는 아이의 부모나 학생, 또 다른 나라를 유학보내려는 모든 분께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준비할때는 너무 정보가 없었고 외롭고 힘들었기에 모든 한국 부모, 학생들에게 힘을 주고싶다.
오늘은 헤일리의 싱가포르 대학 입학과정을 이야기하려한다.
작년 2024년 1월은 밖의 기온만큼 살얼음이었다. IB디플로마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기때문이다.
프리딕점수 (예상점수)는 42점이 나와서 (45점만점) 충분히 원하는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예정이었기때문이다. 미리 대학별 자기소개서등을 준비하고있었고 전공에 따른 내용었기에 오래 걸리기도한 작업이었다.
국내 모 유학원 입학컨설팅서비스를 300만원가량 주고 신청을 했었고 멘토선생님과 준비를 하고있었는데
변경이 불가피해버렸다.
점수를 다시 채점해달라고 IB디플로마 본부에 요청할 수 있는데 재채점( Enquiry Upon Results, EUR)을
요청해두고 있던터였다.
다행히 점수가 2과목에서 1점씩 올라서 싱가포르에 있는 국립대학교에 지원이 가능성이 있게 되었다.
IB디플로마로 공부한 아이들은 이프로그램이 영국과정이기에 이 과정을 잘 인정해주는 국가가
아시아에는 홍콩과 싱가포르, 유럽은 영국, 네덜란드등이 있고 호주로 가거나 미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하나뿐인 딸아이인데다가 저 외국국가에 아는 친척하나 없어서 멀리 보내기엔 아이도 부모도 두려웠다.
홍콩은 지원이 빠르기에 12월부터 지원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헤일리가 가고싶어하는 싱가포르는 이제 지원을 이어갔다.
입학컨설팅을 하는 유학원이 예상점수가 바뀌어서인지 싱가포르에 있는 모든 국립대학교를 다 지원하려니
아이보다도 더 모르는 것이었다.
결국은 취소를 하고 아이와 엄마인 나의 싱가포르 국립대학들 지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 (NUS)
난양공과대학교(NTU)
싱가포르경영대학교(SMU)
싱가포르기술디자인대학교(SUTD)
이렇게 4곳을 지원하였다.
이미 홍콩에 있는 대학들은 입합합격을 받아둔터라 보험은 되었지만 요즘 홍콩대학들 상황이 안좋은것도 있고 점수도 아까워서 싱가포르 대학이 붙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목에서부터 알겠지만 싱가포르 국립대학 중 한곳을 다니고 있지만 작년 상반기는 정말 아이를 키우며
어느때보다 피가 마르는 시간들이었다.
싱가포르 대학은 대학별로 자기소개서와 지원양식이 달라서 지원준비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5월에 좀 빨리 합격 발표가 나서 다른 대학들 결과도 기다려보고 최종 선택을 할 참이었다.
원하던 대학은 잘 안되었지만 그래도 차순위 대학이 합격이 되어 아이는 친구와 상하이, 도쿄 여행을 다녀오며 그간의 힘듦을 떨쳐내려했다.
그렇게 아이가 싱가포르로 같이 가서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참가하는 것을 멀리서 한국헬리코터맘처럼 기둥뒤에서 몰래 지켜보고, 기숙사 물건들을 사서 세팅해주고, 비자를 신청한게 잘 안되어서 그것도 애를 태우고
은행계좌 개설도 우리 나라처럼 빠르지도 간편하지도 않아서 몇번을 은행에 가고 앱을 깔고
실물카드는 보름이 지나서야 배달을 해주고..
아무리 싱가포르가 선진국이고 좋은나라지만 우리나라 시스템에 익숙한 토종 한국인들은 그저 익숙해지기가 쉽지가 않은듯했다.
작년 8월초에 싱가포르로 갔으니 개학이 8월19일이었던터라
싱가포르가 너무 호텔과 물가가 비싸서 바로 국경이 인접해있는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2주간 머물게 되었다.
조호바루는 싱가포르에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데 출국심사 입국심사가 이루어지기에 기차는 5분밖에 안타지만 대략 2시간가량 걸린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일 조호바루에서 싱가포르로 출퇴근하는 많은 직장인들로 출퇴근시간엔 북새통을 이루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조호바로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수영장과 상가 시설이 갖춰진 아파트먼트를 에어비앤비를 통해 대여했다.
싱가포르과 국경만 넘으면되는데 가격이 싱가포르의 1/4가격이다. 숙소도 퀄리티가 다르고 음식가격도 반값이 채 안되었다.
그래서 저 많은 사람들이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을 하는구나. 오토바이 행렬을보면 어느나라나 있는 가장의 무게는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아이와 말레이시아의 짧은 휴가를 함께보내고 싱가포르 대학 개강일을 보고 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는 비행기안에서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동안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본적도 없고 아직은 어린 아이같은 애가 혼자서 잘 살아갈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와서도 일주일은 음식도 안들어가고 잠도 안오고 매일 매일 애가 뭐하나 멀리서 레이다를 켜고 지켜보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아이는 학교 일정이 바빠지면서 차츰 강제 적응과 그리움을 잊어가는듯했고
나도 아이 아빠도 일상에 다시 들어가며 카카오 영상통화를 매일하는 걸로 만족해야했다.
만지고싶고 안고싶은데 화면 안에 아이는 더 가까이 다가갈수가 없었다.
아이의 꿈이 오롯이 있는곳이라 엄마는 더 가까이 가고싶어도 더 개입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헬리콥터맘인 나는 한국에서 아이를 응원하며 걱정하며 그리워하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아이의 싱가포르 대학생활과
나의 삶의 변화와 우리의 성장이야기를 이제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