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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리영 에세이와 산문
오뚝이처럼 일어나야지
by
벼리영
Aug 22. 2023
신은 감당할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
신이 날 버린 줄 알았는데 사랑은 공평했고 때늦게 단련시키는 거라 생각한다.
연일 이어지는 손가락의 통증에도 엄지의 기능을 남겨놓으셨으니
난 류머티즘 자가면역질환자다.
3년 째 투병 중이다.
치료약이 없어 스테로이드로 통증을 달랜다.
처음 발병하고 좀 괜찮은 듯싶어 약을 줄이는 바람에 병이 도져 걸음을 못 걸을 정도였고 택시 문을 열지 못해 기사 아저씨가 도와줘야 했다.
염증수치는 치솟고 쭉쭉 빠지는
근육과 살 10kg이 넘게 빠지고 몸은 아기처럼 휘청거렸다.
먹지 못해 생
레몬을 두세 개 갈아 마셨다.
밥 먹는 것보다 오히려 나았던 시절, 돌아보니 아픈 추억이다.
다시 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발병
전 몸무게를 되찾아 가고 있다.
스테로이드가 몸을 붓게
하고 살을 찌게 한다는 말에 이젠
오히려 살찌는 것을 조심한다.
건강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또다시 재발할까 봐 독한 약이지만 꼭 챙긴다.
처음
먹었던
MTX라는 면역억제제는 항암 약이어서 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의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끊은 약이다. 다행히 스테로이드 만으로도 통증이 달래졌고 염증수치가 요동을 쳤지만 점차 안정세를 보이고 이젠 CRP 1 이하로 떨어졌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87세 엄마의 도움이 컸고 주변 분들의 응원과 기도
덕분이라 생각한다.
손바닥만한 컴퓨터를 펼쳐놓고 옹알이를 시작했다.
옹알이를 벗어나려 낱말을 공부하고 습작은 이어졌다.
점점 언어에 색이 입혀졌다
한 폭의 그림을 글로 완성하려 무던히도 엄지를 움직였다.
어떤 날은 엄지의 강직 때문에 눈으로 쓰고
읽어야 했다.
난 시를 쓰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글로벌 화가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내 그림은 온몸으로 그리는, 나만의
언어이고
창작이고 특별하다고 자신했었다.
아픈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포기해야 했다.
머릿속은 입체적 추상이 번들거리는데 만신창이 몸으로 캔버스화 할 수가 없었다.
입으로 또는 발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들이 존경스러웠다..
내 의지의 부족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먼 나라 사람들 얘기로만 들렸다.
그림을 글로 풀어보면 어떨까
엄지는 살아있지 않은가
아프고 난 후 글에 매진하게 된 동기다.
시조에서 연이어 역동 문학상과 일두 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앉고 서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다.
지팡이를 짚고 나가 눈물을 삼키며 수상소감을 얘기했고 그 자리는 눈물바다가 되었다.
해가 바뀌고 여름이 왔다
진주 남강 문학상 공고문을 보았고 자유시로 도전하기로 맘먹었다.
어쭙잖게 쓰는 시 아직 부족하지만 도전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있기에 성실히 임했다.
30년을 넘게 살았던 진주는 내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
대상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작품상만 받는다 해도 성공이라 생각했다.
대상 300만 원 작품상 100만 원
시 좀 쓴다는 시인들이 얼마나 많이 머리 쥐
나도록 도전을 향한 펜을 갈고닦을지를 안다.
중간발표가 나고 1차 심사에 통과됐다는 문자가 떴다. 그것만 해도 기뻤다.
250편 중에 20 편 속에 속했으니
그러나 9월이 됐는데도 감감무소식이라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내가 대상으로 당선 됐다는 통보였다.
본인이 맞는지 표절은 아닌지 전화가 오긴 했었다.
조금 기대를 한 건 맞다.
작품상만 받아도 좋다고
육신이 병들고 난치병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 남게 해서 시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살게 해서 참으로 감사하다.
부산문화재단 우수작가 창작지원에 선정되어 또 책을 출간해야 한다.
아르코 문학 발표지원에 선정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끊임없는 도전은 아름답게 이어갈 것이다.
질병때문에 목표를 잃고 사는 분들께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여름을 이겨낸 꽃 ㅡ벼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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