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월 외 9 편

아르코문학창작지원발표작

by 벼리영

다월*




낡은 집 한 채가 쭈그리고 앉아 있다


뼈 사이로 관조하는 빛


보수가 시작되고


팽팽이 긴장 감도는 곳

상처를 발라낸다


연골이 닳아 버린 헤진 활막 사이를

서걱서걱 자르며 짜깁기 한 몸뚱이


단단히 한 몸 되는 과정이


MRI에 적나라하다


암호를 풀지 못한 현대판 난치병

독소로 독을 달래며 신열을 견뎌온 생


약방문 비밀 열쇠가


밤 어귀에 걸린다




* 다월: 콘크리트 타설 이음 부분에 전단 및 인장 보강을 위해 삽입하는 철근





잃어버린 얼굴





총성과 비명으로 얼룩진 카불의 밤


주리를 튼 깃발이 자유를 삼키었다



겁 없는 자유수호자 외침


총성보다 섬뜩하다



절규했던 여인은 어디로 사라졌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하던


구호가 뱅뱅거린다


악몽이 시작되다



환하게 웃음 웃던 전광판의 모델들


시간을 되돌리며 부르카를 꺼내 입고


온몸의 소름을 덮고


자유마저 덮는다



노예로 전락하는 유린된 자, 여자, 소녀,


무질서를 지배하며 무질서가 재생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암흑으로 사라진다





*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자연인




산기슭 집 한 채가 바람에 대롱인다


세상을 발아래 둔 지주망 속 오브제


적요를 발라 먹는다


달빛 한 점 수묵 한 점



숲마저 깊어지면 어둠이 눈을 뜬다


별들이 기록하는 봄밤의 출산기



-나무가 숨통을 멈추니


걸작이 쏟아졌다-



햇귀를 물고 있는 저 빛나는 아기별


유랑자의 느낌표가 낮달처럼 걸린다



고요가 밀려나간다


명화 한 폭에 젖는다





포노사피엔스




온라인 사업자가 속출하는 mz세대


반생이 걸려있는 sns의 연구소


광고가 대박을 치면


댓글 달며 달려요



스마트폰 쳇 방이 관리하는 고객들


이미지가 도배된 아침이 눈을 떠요


오늘도 공허한 안부


여기저기 퍼 날라요



늘어나는 게이머 공역이 사라지죠


한 번쯤 베팅해서 큰돈을 벌었으면


시간이 삭제된 줄 모르고


폰 삼매에 빠졌어요





오월 데생




푸른 잎 모아다가 지붕을 엮어놓고


홍자색 꽃잔치는 오늘도 만석이지


담벼락 덩굴장미의 사랑 타령 여전해



모란의 하모니에 노곤한 들고양이


하느적 봄바람이 콧잔등 건드리면


늘어진 하품 소리에 물까치가 포르릉



구성진 이팝꽃이 고봉으로 쌓이면


배고픈 어머니가 눈으로 배 채웠지


꿀벌이 아카시 꽃과


살림을 차렸나 봐





옷 수거함




숨들이 엉켜있는 깜깜한 골방이야


가난과 부유함이 나란히 공평하지


어둠 속 달빛 꿈들은


새 주인이 궁금하지



반지하 셋방에서 곰팡이에 이골났어


홈쇼핑 중독으로 던져진 새 옷이야


함속의 시간만큼은


모두 다 같은 처지



빛나는 삶 공허한 삶 만감이 버석거려


갑질도 오만함도 멈췄으면 좋겠어


가난이 시작될 곳에


온기가 돼줄 거야




배설의 기하학

-루왁커피




짐승 똥 비싼 연유가 분으로 빛 발할 때


변질된 필름 한 장 정박된 생 톺고 있는


섬마을


사향고양이


고엽처럼 구겨진다



속수무책 고삐 꿰어 잡혀온 그날부터


탐욕에 저당 잡힌 몸 무덤은 깊어 가고


녹슬고 뒤틀려 버린 생


야금야금 씹어댄다



정신 줄 놓고 살아 명줄마저 짧아진


먼 산 보는 그렁한 눈 흰 달빛의 그루밍


오늘도 커피 제조기 삶



덧없이 쏟아낸다




포노사피엔스

-코인 단톡방




‘본방은 비즈니스 정보 공유 방입니다


소우주가 손안에서 펼쳐지고 있어요’


상큼한 방장 로봇의 인사

피고 지는 단톡방


달처럼 뜬 공지 전문가의 입담은

시계의 분침 따라 화폐로 돌변하고


채굴한 코인으로 결재

탐색이 시작된다


구석구석 조명하는 스마트한 알고리즘

신종의 부자 탄생 바닥 기는 중산층


어둠이 퇴화해 버린


뜬눈으로 밝힌 밤


무한대 데이터에 잔고가 사라진다


24시에 중독되다 수정체 빛 잃어버린


미로 속, 더한 환상 속


더빙하는 사람들






오토튠*





가끔은 내가 아닌 소리를 내고 싶다


교묘히 포장이 된 삶이면 좀 어떠랴


그토록


저렸던 소리 비음 모아 버린다



건조한 파열음도 촉촉이 말랑하다


풍부한 성량으로 음치는 회복된다


사랑도


조절 가능한 오토튠이 있다면



설움은 자동으로 미소로 바뀌겠지


내 삶의 군더더기 사라져 버리겠지


숙명은 젊어질 거야


다시 설 수 있겠다




*가수의 잘못된 음정을 자동으로 수정하는 플러그인




단풍나무를 읽다




백발이 오기 전에 핑크로 물들여서

멋스런 파트너와 왈츠 한 번 춰 봤으면


생각만 했을 뿐인데

양 귓불이 빨갛다


세기를 주름잡던 별들의 당당함도

끝내는 접혀 버린 고엽으로 흐르는 생


늘그막 꿈을 삼키며

노을처럼 물든다


둥지를 이탈해서 나비처럼 날아든 몸

책갈피에 남겨진 고요히 깃든 사랑


모질게 이겨낸 한 생

붉은 사연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