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스케치

by 벼리영

가을 하늘에 젖다




구절초 향 짙으니 하늘은 더 높아진다


쪽빛 옷 차려입은 어머니 깊은 눈매


따끈한 국화차 한 잔


우려내고 계신다



하늘을 그리다가 물감을 엎질렀다


구름은 사라지고 점점이 박힌 날개


끼루룩 날갯짓하는 하늘이 참 해맑다



중천에 떠 있는 해 발걸음을 멈추고


격정을 떠나보낸 초로의 삶 비춘다


여유를 풀어놓고서


가을 한 권 엮는다




은행나무




붉디붉은 시간 속에 개나리 옷을 입고


해 질 녘 길가에서 봄처럼 서 있었네



동화책 가을 모퉁이


붓질하며 손 흔들며






유자차를 담으며




무딘 칼은 버리고 벼린 칼로 썰어야 해

여름내 모은 향기 날아가지 않도록

씨앗은 걸림돌이지

과감히 버릴 종목

집착이 위험하다고 무수히 말하지만

뼈 앙상 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지지

상처를 버리고 나면

한 생이 거듭날까




단풍나무 성찰기


오랜 시간 흘렸을 얼룩도 따뜻하다

바람이 새긴 상처

뒤틀려도 괜찮다

어쩌다 비밀이 새고 귀밑부터 붉어졌다


멈추지 않는 혀 고장이 났나 보다

이면의 주홍 글씨

점점 또렷해지고

온몸이 붉은 글씨체 열병을 앓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도 풀지 못한 몸의 족쇄

부추기는 바람, 햇살

손 유희에 숨 막힌다

뭇사람 희롱한 죄목이 가을 끝에 걸렸다

상처 난 목울대에 새살이 돋는 일은

서설瑞雪의 몫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떠나는 잎새를 붙들고 주홍 글씨 지운다




만추를 보내며


새파란 젊은 꿈이 앞다퉈 물든 자리

시대를 풍미하던 고목이 붉어지면

잡나무 풀어헤친 몸 붉은 글씨 휘갈긴다

분신을 서두르며 잉걸불로 타오르다

사위는 길목마다 밟히는 잎새의 꿈

초설은 중년을 떠밀고 추회 하며 돌아본다

한 계절 떠난 자리 바스락 거리는 꿈

낙엽은 거름 되고 곳간에 쟁인 결실

평온한 풍경을 남기고 11월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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