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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벼리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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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영 Jan 04. 2024

은행이



나무가 일렁일 때마다 슬레이트 지붕이 붓질을 한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점점이 박혀 있는, 해넘이 같은 우울이 노랗게 앉아 있다


장날 들여온 암캐 한 마리

그 시절 무조건 쫑, 암컷은 메리,

쫑과 메리가 번갈아가며 집을 지켰다

두 살 메리가 쥐약을 먹고 죽자 쫑이 까만 꼬리를 흔들며 왔고 또 다른 메리가 쫑이 누렸던 자리를 차지했다


어느 날 밤새도록 늑대 울음을 쏟아 놓고 홀연히 가버린 검둥이, 쫑

마지막 절규가 새겨진 마당 한구석이 살아나고 있었다


메리는 노란 털 어미였다

은행 색과 닮았다고 은행이라 부른 건 둘만의 비밀


해거름 녘, 파스텔 수채화가 수묵화로 돌아 서고

낙조는 늘 그렇듯 울음을 달고 나타난다


은행이 먼 산의 시름을 눈에 담고

꼬리조차 흔들지 않는다

보고 싶은 거야 해 질 녘 붉은 허울이 새끼를 품고 있는 거야

눈꺼풀에 걸린 까만 울음을 읽으며 가여운 마음이 등을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왕,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순식간에 이마를 물어뜯었다

방해 말라며 다시 사색에 잠긴 노란 은행 한 그루


가을 물들인 이마가 한동안 붕대를 감고 그래도 가여웠던 네가 어디론가 끌려가던 날

목 놓아 은행을 불렀다


물렸던 상처가 떠다닌다

누군가를 문 적이 있거나

혀에 끌려다니다 또 다른 내가 버려지진 않았을까

돌발적 가시 같은 말이 흉터가 되진 않았을까


이마에 훈장처럼 새겨진 자국,

은행을 안고 산다



<월간 모던포엠  2024년 1월호에 발표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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