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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벼리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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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영 Jul 27. 2023

DEAR MY 레이첼



분명 네 의지는 일 퍼센트도 없었지


태평양 위를 날아 기러기 가족이 정착한 캐나다 서부 작은 도시

어린 네 성장의 속도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어

그때부터 무척 가려웠지, 날개가 돋느라


작은 별에서 색다른 행성으로 옮겨가는 일, 우리 가족의 둥지는 싸늘했어

어울리지 않는 가면이 웃음을 머금고 있었을 뿐

갓 열세 살 오빠가 서툰 통역을 하고 넌 천진하게 배시시


아기는 몸만 자라는 게 아니었어

수시로 피부를 자극하는 가시

젊은 날 곤두세웠던 송곳 같은 절망이 나도 모르게

네게로 옮겨갔나 봐


- 내 이름 레이첼이야 엄마 예쁘지? 그래 아가


넌 레이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지


- 그거 아니? 고흐가 잘린 귀를 레이첼이라는 유녀(遊女)에게 보냈다는 것을

난 웃음으로 함구했지


너는 영문도 모른 채 아픔을 후비고 난 귀가 아프기 시작했어

사계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나와 내 아가 레이첼


기러기는 언제나 미숙하지

멀리 날아야 하니까 바람과 싸워 이겨야 하니까


편백나무처럼 오뚝하게 자란 네가 향기를 피우는데

아직도 귀 아픈 내가 자꾸만 널 밀어내고 있구나

불안이 날개를 펴고 레이첼, Dear my Rachel을 부르고 있단다

맘껏 날으렴

귀 밝은 계절을 등지고

내 귀를 묻고


새살이 돋고 있단다 아가

가시가 무뎌지고 부드러운 젖가슴, 내게 할미라고 부르는

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오후가 저물고 있구나


무엇보다 이쁜 나의 아가

레이첼 



그림- 벼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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