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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벼리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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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영 Nov 10. 2024

영도다리

영도다리

                                벼리영



빗살무늬 햇살이 다리를 들어 올린다


다리가 팽팽해지기까지 예각이 된 오후가 물기를 머금는다


포효하는 고래 한 마리

각설이 가위질 소리,

물마루를 가로지르는

피란민 울음소리


부식되지 않은 소리가 빗방울처럼 맴돌았다


하루 일곱 번 다리가 올려졌고

유령의 이름들이 담쟁이처럼 붙었던 때,

다리 아래는

피란민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그리움이 한계에 닿으면 꿈을 잃은 사람들이 달빛 속으로 몸을 던졌던 바다


점쟁이의 골목 안쪽 위태한 쪽방 하나를 들추면 삐걱거리는 문,

할머니와 11살 엄마가 묵었던 곳


비무장 지뢰, 끊긴 한강대교, 총구를 피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고

누가 죽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전쟁, 남쪽으로 밀렸던 때

할아버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죽음과 삶이 공통분모였던 골목에서 올라갈 때마다 귀신의 다리라고 굽신거렸던 할머니


생을 등진 사람들이 속출하자 다리 난간에 나붙은 '잠깐만'  희망 문자


'종이 간판이 유리창에 붙고 훈제 고래 고기가 별미였지

포효하던 지느러미가 흥건했어 '


너울성 파도가 덮치는 날엔 귀신이 끌어당긴다는, 고래가 뿔을 세우고 눈물을 흘린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했다


큰 바람이 불었던 밤 갯물에 휩쓸려간 할머니

가난이 숨통을 트자 고래가 흔적도 없이 매장한 거라고

자의와 타의의 가십이 당신을 분해했다


들렸던 다리가 일자로 뻗는다

백발이 된 엄마가 사이렌 소리에 눈을 감는다

오래된 상처가 미등을 켜고 젖은 오후를 건넌다


검은 고래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다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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