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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영 Dec 11. 2024

견들의 합창

#단편소설

파수꾼 풍금이

1.


주인집 마당은 무척 넓었다.

뱀이 쪽마루 아래 똬리를 틀기 위해 한참을 기어 다니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오소리에 잡혀 먹히기 딱 좋은 크기의 마당이다.


집 뒷쪽으로는 느티나무가 많은 얕으막한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앞쪽엔 1Km 쯤 밭을 가로질러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여인의 가슴을 닮은 봉오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따뜻한 기운이 감돌아 터가 세지 않고 안온하여 풍파가 없을 명당자리라고 안주인은 수시로 말했다.


집터는 3년 만에 가꾼 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갈하고 세련된 주택으로 변모해 갔다.

앞뜰과 뒤란은 계절마다 다르게 피워 올리는 들꽃들의 향취로 방문객들을 홀리기에 충분한 매력을 갖추고 있었다.


비양 골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서른 가호 집은 노인들의 전유물이 되어 정겨움은 사라지고 흉가처럼 변해갔다.

마을 끝에 세워진 주인집은 디귿자 모양으로 정통 한옥을 본따 황토로 지어진 집이다. 농가였지만 돈 있는 사람들의 전원 빌라 못지않은 넓고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풍채를 지니고 있어서 다른 집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안주인이 닭장 같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벗어나 전원지에 새 둥지를 틀었을 때

드디어 그녀는 오랜 숙원의 꿈이 이뤄진 것에 대해 감사했다. 오래전부터 전원주택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가 땅을 매입하고 집을 지은 것이다.

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 불편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하면서도 그녀의 가족과 친구들은 맘껏 축하해 주었다.

그녀는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의 공급을 원활하게 만들었다.


그곳에 풍금이라 불리는 똥개가 주인보다 일찍 터를 차지하고 집을 지켰다.

홀로 집을 지키면서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안주인의 꿈이 이루어졌을 때 그녀는 몇 가지 이유로 도시의 집을 비우지 못해 1년여 이사를 하지 못했다.

그 기간 그녀는 자동차로 두 시간의 거리를 오가야 했다.

풍금이 밥 때문이기도 했고 어수선한 마당과 새집 티를 못 벗은 황량함을 빨리 메꾸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녀는 풀을 뽑고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렸다.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화강암으로 징검다리처럼 디딤석도 놓았다.

주차장을 따로 마련해서 마당과 분리시키니 마당이 넓게 살아났다. 솟을대문은 구중궁궐의 양반집 대문을 연상하게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의 수고로 6개월 된 새끼는 어느덧 성견으로 변모해 갔고 집은 인테리어 잡지사 <아름다운 주택>에서 문의가 올 만큼 아름다운 전원주택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제 주인은 완전히 이사를 해서 황량했던 터는 활기를 띠었다.


풍금은 진돗개를 닮은듯한, 기골이 장대한 개로 성장을 하였다.

명견과 똥개의 조합, 한마디로 믹스견이다.

양쪽 좋은 유전자만 닮아 태어난 혼혈견의 은색 털에선 윤기가 흘렀다.

수상한 생명체를 포착하면 짖는 소리가 우렁차서 을의 잡견들은 오금을 저렸다.


언제부터인가 풍금은 밤마다 수음을 했는데 

어느 날 그 모습을 안주인에게 들키고 말았다.

안주인은 밥상에서 풍금이의 본능적 행위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호호호 풍금이가 글쎄 그짓을 하더라니까요.

뺑뺑이를 돌며 대가리를 처박고   처박으며 흐흐~그걸 핥고 또 핥고 큭큭. ~"


"아휴 안쓰러웠다니까 쟤도 이제 다 큰 성견인 거죠. 사람으로 보면 장가갈 때가 되었다니까

호 호 ~우리 풍금이 한테 짝을 붙여줘야겠어요.~"


주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알아서 하라 했고 마님은 장날 드디어 해탈이라 불리는 풍금의 피앙세를 데려왔다.


둘은 물 한잔과 한 사발 사료 또 마님의 선물인 참치캔을 놓고 혼례를 했다.


혼자라는 서러움은 동료들 사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서른 가호의 임자 있는 암컷들은 몸을 사렸다.

혹시나 놈이 덤빌까 봐 털을 세우고 각을 세우고 외로움이 뒹구는 비린내 나는 몸뚱이를 곁눈질로 기웃거릴 뿐이었다.


그동안 가끔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를 들개가 풍금의 씨받이가 되고 욕정을 받아 주었다.

홀아비보다 더 냄새나는 암놈 뒤에서 눈 꼭 감고 일을 치르고 나면 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야속해서 서너 날은 입맛도 없이 아랫도리만 핥아 댔다.


기골이 장대하고 여우 털을 두른 듯 은빛 털이 빛나는 그놈을 속으로만 흠모하는 암캐들, 잘못 걸리면 패가망신이고 살아남지 못함을 그 고을 암캐들은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수놈들 하나같이 성질이 포악하여 놈은 금기 대상 1호였여차하면 물어 뜯을 기세로 경계를 했다. 고달픈 삶이 풍금이마저 성질 더러운 놈으로 만들고 있었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은 어느 생명체나 마찬가지 우울한 세월이 놈의 기골을 망가트리고 풀 죽은 노인네처럼 홀아비 냄새를 푹푹 풍기게 했다.


그런데 드디어 단짝이 생긴 것이다. 읍내 장터에서 실하고 풍금이 와도 닮은 듯한 예쁘게 생긴 암캐를 들여온 것은 순전히 주인마님의 놈에 대한 배려심 때문이었다.


아~이 얼마나 살맛 나는 세상인가

짝을 이룬다는 것이 이토록 축복된

신의 계획이라면 매일매일 경배하고 숭배할 것이다.


그동안 풍금은 혼자라서 서럽다기보다는 놈의 편이 없다는 서러움이 더 크게 작용했다.

그것은 지독한 외로움이 되어 기를 떨어 트리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오히려 사나운 오소리, 길냥이들과 대적도 해야 하는 고달프고 만만치 않은 삶 그들조차 얕보고 덤비는 일상들은 삐딱한 부정적 시각을 형성했고 염세적인 사상의 발로가 되어 성악설의 우세를 고집했다. 또한 우울은 늘 차디찬 바닥과 주위를 맴돌았다.

신통찮은 삶들이 증명되는 시간 속에서  놈의 가치관은 부정의 늪에 빠저 허우적거렸다.


살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

포악해져야 한다.

모략도 때론 필요하다.

놈이 해탈을 맞이하기 전까지 깨달은 삶의 진리이고 정당성이었다.


하루는 오소리의 목을 물어뜯어 갈기갈기 해쳐 놓은 적이 있었다.

잠시 잠깐 오수를 즐기고 있는데 꿈속이 사나워서 눈을 떠보니 그놈이  아껴둔 밥상을 비우고 배까지 두들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주인이 특별히 하사한 고깃덩어리,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갈비 뜯는 날이었다.

홀로 맛보는 하례의 격식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던가!

이미 한 사발 곱빼기 밥을 먹은 뒤라 잔치는 한숨 눈 붙이고 나서 즐길 참이었다.

꿈속에서 아리따운 여친과 꽃길을 걸으며 데이트를 즐기다가 황제의 식탁에 초대하려고 손을 이끌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웃 개들이 달려들어 놈의 식탁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비몽에서 벗어나 안도의 숨을 쉴 찰나,

이건 또 무슨 귀신의 장난질인 건지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 풍금은 아연실색했다.

쌍욕이 무지개로 떴다.

빨가벗겨 쫓겨날 새끼

주리를 틀 놈

노릿노릿 구워 먹을 놈

초파리 같은 놈

파리처럼 니 놈을 내 손바닥으로 능지처참 할 거다.

제발 꿈이기를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본능적으로 오소리 목덜미를 물었다.

사나워서 살모사도 피하고 동네 똥개들도 비껴가는 오소리

그놈이 고꾸라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순간 놈이 허벅지를 물었지만, 분노의 화신은 오소리의 사나움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성난 호랑이의 절규가 뒷동산을 뒤흔드는 듯 했다.

힘 한번 못 써보고 오소리는 축 늘어졌다.

그때서야 분노가 가시고 숨을 헐떡거렸다.


읍내 시장을 다녀온 주인마님은 대문 앞에 목 부러진 오소리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의 악감정을 가진 텃세 심한 사람의 짓이라 생각했다.

두려웠던 주인마님은 곧바로 처마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어머나 누구랑 또 싸웠어?

아이고 심하네 아프겠네 "


물약으로 허벅지가 소독되고 풍금의 신 같은 존재인 주인마님의 측은지심 한 보살핌을 받으며 내심 분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완전 범죄의 쾌감을 만끽했다.


마님의 배려로 해탈이라는 예쁜 짝도 얻었고 그것은 풍금이 살아온 생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해탈은 순둥이 중의 순둥이었다.

얼굴도 예뻤지만, 조석으로 변덕을 부리는 풍금의 성미를 잘 받아주는 인내심도 있었다.


풍금의 피앙세 그녀가 수태를 했고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풍금은 그녀의 매력이 절구통처럼 변해 간다는 사실을 못 견뎌했고 은근슬쩍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시키고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해탈의 모놀로그-◇


내 새끼를 가진 피앙세는 어떤 형태로든 아름다워 보이고 경건한 마음이 들어야 한다.


어느 시골 마을 똥개로 태어났지만 나름 귀여움을 받았다. 세 명의 언니가 있고 엄마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굶을 일도 없었다.

주인은 상냥했고 동네에서 얻어온 음식물을 우리에게 먹이기도 했다.

우리가 커가자 마당이 비좁았다.

때마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먹이는 일이 힘들었을 거다.


"휴우 얘들이 크니 안 되겠어요. 내일 장날에 세 마리 내다 팝시다 여보"


주인마님이 우리를 쓰다듬으며 좋은 데로 잘 가라고 덕담을 해주었다.

엄마 메리는 눈치를 채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음식을 먹지 않았다.

우린 엄마 몫까지 배불리 먹었다.


뒷날 주인은 우리를 읍에 있는 장에 데리고 갔다. 그것이 엄마와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집을 나서는 동안에도 우린 헤벌레  꼬리를 흔들었고 멍하니 쳐다보는 엄마가 왜 눈물을 흘리는 지도 몰랐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언니들도~

 언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하루종일 먼 산만 바라봤다.


풍금은 처음엔 내가 예쁘다며 핥고 핥고 집을 떠나지 않았다.  

신은 수컷들에겐 훈육과는 상관관계가 없는 본능적 감각을 주었다.

신의 성별을 굳이 따지자면 남자에 가까웠을 거라는 생각이든다.

신도 결국 신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자가 변한 화신일 지도 모른다.


본능이 앞선 사랑은 위험하다. 엄마와 사랑에 빠졌던 아빠도 우리가 태어난 후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잊은 듯했다. 주인은 아빠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 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보신탕 집에 팔려 갔던지 아니면 아주 먼 곳에서 다른 암컷과 살림을 차렸을 거라며 대문을 걸어 잠갔고 대문이 열려있을 땐 우리의 목줄을 단단히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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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설정은 사실에 근거한 것도 있지만 허구로 쓰여졌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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