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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벼리영
Dec 11. 2024
#견들의 합창 2
-2.-
패기와 용기를 가졌지만 질펀한 동물의 본능이 풍금에게도 절절히 흐르고 있었다.
태초에 우리 조상을 빚은 신은 남성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풍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외출을 서둘렀다.
풍금이 아침밥을 먹고 외출을 하면 해탈은 곁에서 아무 소리도 못 하고 큰 눈만 껌벅거렸다. 뒷모습을 슬픈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새끼를 가지기 전에도 풍금의 외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종 아침에 나가서 저녁 으스름 해가 기울고 나면 집 찾아오는 지아비였다.
읍내 장터라도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여기저기 부스러진 음식 핥아 내느라 시간 채우는 거라고 그놈의 방랑을 애써 눈감아 주곤 했다.
가끔 먹다 남은 양념 통닭 뼈를 물어다 주곤 했기에 그 고소함에 중독되어 버린 건지
해탈은 그런 지아비가 야속하다기보다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비도 그랬고 어미의 삶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아비가 워낙 출중한 인물 여야지
바가지를 긁어대면 그 잘난 놈은 밤을 새우고 들어오거나 영영 나가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개과천선 하여
영국 황실의 애완견으로 태어났던지
부잣집 마당 개로 태어났어도 마찬가지였을 팔자라고 애써 다독거렸다.
"호호 오늘도 풍금이는 어디를 싸돌아 댕기는 지
수놈은 수놈일세
해탈이는 맨날 집만 지키는구나! 우리 이쁜 강아지 호호호"
주인마님의 웃음 섞인 넉살에,
풍금이 보다 더 일찍 일터로 나가거나 멀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는 바깥주인이 떠올라 마님의 팔자 또한 자신과 별반 다를 거 없다고 해탈은 히죽히죽 따라 웃었다.
이제는 뱃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고
새끼가 태어나면 지아비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고 방랑벽도 사그라질 것이다.
착함의 대명사는 단순함과 초긍정이다.
순둥이 해탈의 단순과 초긍정의 삶이 새록새록 그녀의 촉수를 살찌우는데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오판과 편견은 때론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준다.
만인을 행복 속에 살게도 하고 불행의 늪으로 빠트리기도 한다.
척박하고 수렁에 빠진 길바닥 운명도 오판으로 행복길로 포장될 수 있으니 아이큐가 낮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오판보다는 둔하다는 것이 맞겠다.
고민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행복일 수도 있다.
- 은실이와의 만남-
풍금은 비양 골을 벗어나 이웃 마을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슬레이트 집 마당 구석진 곳 기울어진 쪽방에 자리한 암캐 은실이가 어슬렁거리며 풍금이 나타나길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은실이는 함께 살던 수놈이 차에 치여 죽은 후 혼자 생활한 지 1년이 채 안 된 박복한 암캐다.
혼자 사는 주인 할머니는 돼지나 먹는 음식 찌꺼기를 모아 와서는 던져 주곤 종일 기척이 없다.
지독한 삶의 시간이 회오리가 되어 돌고 돌았다.
지아비 없는 설움과 고독한 시간에 갇힌 생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많은 찌질 맞은 수캐들이 심심하면 은실의 옆구리를 비비고 젖가슴을 희롱하고 사타구니를 공격해 댔다.
지아비 있을 땐 어림도 없던 상스러운 것들의 처사가 기가 막혀서 암캐로 태어난 설움에 꺼이꺼이 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썩어 없어질 몸뚱어리지만 그래도 자존심이란 게 있는 법이다.
족보ㆍ혈통이 있는 놈은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라도 된다.
이쪽저쪽 동네에서 냄새를 맡고 온갖 비천한 것들이 달려들 때는 쌩쌩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에 뛰어들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비린내를 풍기는 초로의 놈이 덤볐다.
첨엔 으르렁거리며 맞섰는데
능수 능란한 그놈의 술수에 말려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놈의 생식기가 음부에 꽂히고 말았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끙끙거리는데 어디선가 난데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날 선 칼날 같은 고음은 다름 아닌 놈의 여편네였다.
그년한테 물리고 뜯기고 짓밟히는 동안 초로의 놈은 아랑곳하지 않더니 어느 순간 만족한 건지 포기를 한 건지 축 쳐진 그것을 흔들거리며 잽싸게 꽁무니를 내빼고 말았다.
"쥐새끼 같은 놈
잘근잘근 물어뜯어서 죽여 버릴 테다
미친 X새끼"
은실은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생과 죽음의 갈림길은 찰나이다.
빛의 속도로 죽음의 사슬에 포박당하기도 하고 이성의 초강수로 생을 이어가기도 한다.
살아있다고 산 것이 아닌 생의 비애가 이어졌다.
지독한 삶의 경험을 느껴본 자만이 읊조리는 분노의 한탄가가 절로 나왔다.
세상을 향한 원망을 고독에 점철된 쪽방 구석에서 온몸이 아프도록 부르르 떨었다.
은실은 밤마다 낑낑대며 앓았다.
'현생은 똥물에 튀겨진 비극의 서사시다.
소리 없는 절규와 함께 멸망해 버리길 바란다.
난 창조자의 실수로 제작된 졸작품인가 이번 생은 실패한 생, 제발 고통 없이 사라지길 바란다.'
그곳에 기거하는 생물들도 어차피 불량품인 삶이다.
기생충처럼 뇌를 갉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음습한 사막의 골짜기에서 생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은실은 조만간 생을 정리하리라 맘먹었다.
'남아있는 생의 동아줄이 썩어서 툭 끊어지기를 바란다.
이렇게 살 바엔 죽음을 달라
스스로 죽을 수 있는 용기도 없다.
차라리 지아비처럼, 음주 운전자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돌진해 오길 바라고 바란다.'
눈이 감기면 구멍 난 마음의 상처는 그 어떤 것에도 위로받지 못하고 영혼은 말라비틀어질 때로 비틀어져서 서서히 죽어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때 만나게 된 풍금이 와의 인연,
풍금은 신사의 격을 갖추고 있었고 기골도 장대했지만 풍기는 외모가 부모 한쪽이 분명 족보가 있을 법한 은빛 찬란한 털을 가진 멋진 놈이었다.
그놈은 함부로 희롱하지도
들이대지도 않았다.
놈은 그동안 스스로 터득한 그만의 노하우로 여러 암캐들 애간장을 태우더니 엉덩이를 들이대고 풍금을 유혹하는 암놈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 가는 것이었다.
수컷들한테 지칠 대로 지친 은실은 우두커니 그 광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을 뿐.
검은 털을 가진 은실과 흰색에 가까운 은 빛의 풍금은 대조적이었지만
정반대의 색깔이 오히려 서로를 호기심과 설렘으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보색의 관계가 훨씬 관계를 화려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둘이 있으면 혼자일 때 보다 더욱더 빛나 보이는 관계를 환상의 커플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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