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영 Dec 12. 2024

#견들의 합창 3


   -3-



그랬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해도 환상의 커플이었다.

은실이가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바람이 든 건지

페미니즘의 진수를 보이려는 지

암캐들의 노골적인 대시는

웬 떡이냐 싶었고 힘들게 다가가지 않아도 고도의 기술을 터득해 온 사랑꾼의 기교를 맘껏 발휘할 절호의 기회였기에 풍금은 편안하게 성애를 즐겼다.

하루하루가 복된 날이라 생각했다.


지구가 갑자기 거꾸로 돌고

낭떠러지로 구른다 해도

얼마든지 페미니즘을 지향해 줄 것이다.  

암캐들과 유희를 즐기며

실실 비웃어 주기도 하면서 놈은

한나절을 비어있는 곳간에서

외양간에서 마구간에서

물레방앗간에서 항간의 눈을 피해 성의 쾌락에 빠져들었다.

가끔 넓은 광장을 무대 삼아 보란 듯이 엉켜있는 것들을 보면


"머저리들

숨어서 하는 맛을 모르는 것들

돌멩이 맞는 치욕을 모르는 병신들 "


한참 더 진화되었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대가리에 우쭐하며 큭큭거렸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계속 먹다 보면 싫증이 나는 법, 익히 알고 있는 진리다.

진리도 변하는 거라고 경험으로 채득했다. 그건 점점 식상해지는 욕구에 한몫을 거든다.


집에서 오매불망 기다리는 해탈의 생각이 전혀 안 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생과 자신의 생이 같을 수는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놈은 조물주의 걸작 기골이 장대한 수놈이 아니던가

삼락의 선물은 아니지만 두 가지 만이라도 완성해야 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생이다.

동물적 감각 혜택을 더 부여받은 듬직한 수놈이다.

여편네를 주변 살쾡이 같은 놈들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만으로도 자유로운 영혼을 구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요즘은 수컷들만의 병기를 암컷들이 가로채가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세가 가까워 오긴 왔나 보다.

진화의 한 흐름인 건지~

풍금의 대가리가 욱신거린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마도 암케들 세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쌈박질도 잘하는 암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혼자만 탐하려는 질투의 화상들은 왜 이리 또 많은 건지

암컷들 사이에서 놈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은실은 달랐다.

해탈과 비슷한 성정이었지만 모진 시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습득으로 수컷의 동향과 에로스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만 바라보는 해탈 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발정 난 암캐들의 행동과는 더욱더 달랐던 건 말할 것도 없다.


닳고 닳아서 쓰레기에 던져질 육신이 아닌 진흙탕 속에서 피워 올린 달관한 꽃송이었다.


생의 연륜은 척박한 곳, 고된 생 가운데서 물을 올리고 살아가는 것의 진수를 깨닫게 한다.

은실이가 놈을 피하는 것에 끌리기 시작한 것이 호기심의 발로가 되어서 끈질기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어 갔던 것이다.


이젠 없어서는 안 될 기구한 운명이 되어 쪽방에 신방을 트고 신물 난 암컷들의 눈을 피해 서로를 탐한다.

비단 에로스만이 아닌 풍금의 사랑은 은실의 처지를 동정하며 새록새록 정을 쌓고 있었다.


은실인 처음엔 뻣뻣한 암캐였고 그놈이 그놈이려니 밀쳐 내기에 바빴다.

그렇지만

자신을 동정하며 다가오는 수놈의 눈빛에 어느 순간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사랑의 향기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날개를 단 씨방의 포낭자여!

멀리멀리 날아서 이 행복을 담은 꽃을 피워다오!

사막이어도 좋고 천적들의 소굴이어도 좋다.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을 원망하고 졸작품이라 여겼던 세상이 온통 꽃이 되어 날아다닌다.

누군가에게 기대며 산다는 것이 이토록 단단한 생의 동아줄이 될 줄이야!

세상의 종말이 와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노라는 그 사과는 사랑 아니겠는가!

사랑하다 죽을 것이다.

내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왕자의 목을 축이고 장미의 혀를 녹일 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비단 장미뿐만이 아닌 내 영혼의 정수와 새롭게 정리된 육체의 감각이다.

모호한 시간의 테두리는 뫼비우스 띠처럼 흘러간다.

미래의 시간이 끊기지 않도록 사랑의 띠로 칭칭 동여맬 것이다.


  -케미를 위하여-


풍금은 은실이와의 케미가 실로 환상이라 여겼다.

환상의 커플은 비단 외모에서 느껴지는 것뿐만 아닌 내면의 끌어당기는 법칙, 속궁합도 포함이 된 것이다.


사랑은

아담과 이브로 돌아가는 일이다.

조건도 계산도 찾아볼 수 없는 곳

에덴동산으로 귀환하는 일이다.


성애를 흉보거나 업신여기면 안 된다.

그것은 생명의 가장 깊고 근원적인 에너지이다.

성을 떠난 역사와 예술이 어디 있던가.

성 중독으로 죽어 가는 자들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 중독자를 옹호해서는 절대로 안 될 일.

그것은 강과 같아서 너무 세지면 범람하고 알맞으면 생명을 풍요롭게 한다는 유태 격언과 맞물린다.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한 욕망은 범람하여 익사하고 만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자제심을 갖춘 사랑의 행위만이 축복이고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포유류에게 가치를 부여한 종족 보존의 이유와 참 즐거움의 공유가 합당하게 이뤄지는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옥문에 사로잡힌 자아의 붕괴로 이생을 망치는 일은 네 나약한 멘털의 부재를 탓해야 할 것이다.

신의 뜻을 거룩하게,

감성과 이성의 경계에서

지극히 내밀하게 잘 사용해야만 한다.


    -해탈의 출산-


해탈은 출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인마님이 가져다준 면포를 가지런히 펴고 그 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끙끙거리며 아픔을 참아 내며 터진 양수 위로 바람 빠진 풍선하나가 미끄러져 내렸다.

싸인 보를 터트리며 혀로 정성스레 핥아주자 생명체가 꼬물 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30분 후에 또 하나의 생명을 받아 내고 또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암컷들에 부여된 산통의 징벌,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 그 후론 출산하는 모든 암컷에게 내려진 신의 형벌치고는 참을 만하다고 이를 악물며 악다구니를 쓰면서 세 마리의 새끼를 연달아 쏟아냈다.

해탈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절하듯 쓰러져 버렸다.


지아비를 찾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네 생

나는 내 생

함께 공유할 수 없는 생의 이별에 놓인 시간을 아낄 것이다.

무모한 소모전으로 생을 망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부모로부터 체득을 했다.

새끼들은 자라면 분양이 되고 어느 대갓집이든 비천한 가정이든 각자 몫의 생으로 이겨 내며 살아갈 것이다.

젖을 물리고 옷자락을 입히고

잠재된 이기와 폭력을 버리게 하고

질서를 가르치는 일이 버거웠다고

늙은 몸뚱이가 짐으로 남아서는 안 될 일이다.

세상 어느 천지에 살든

정한수 떠 놓고 비는 어미의 간절한 마음 그 마음속에 애잔한 기도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아니어도 괜찮다. 오직 위험과 질병으로부터 지켜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 마음은 불변할 것이다.


사랑이 이 정도면 충분했다.

생이 불변하지 않듯이 사랑도 그렇다.

에덴동산 근처에도 못 가본 생도 허다하다.

축복받은 생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오늘은 풍금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개 한 마리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합창처럼 들린다.

누구에겐 죽음을 앞둔 진혼곡으로,

또 어떤 이에겐,

왁자지껄 클럽에서 요동치는 혈기 넘치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해탈에겐 우렁찬 생의 찬가로 들린다.

새끼들이 젖을 힘껏 빤다.

언젠간 또 이별을 하겠지만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아름다운 밤이다.

눈을 감으니 밤을 적시는 찬가

힘차게 응원하는 소리

멋진 하모니.....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