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다녀왔습니다.
졸업한 지도 어언 오십여 년.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 사업하던 친구들,
모두 거의 은퇴하고 이제는 손주 보는 일로 소일하는 친구들이 많더군요.
하기사 우리 나이, 종심(從心)에 다다랐으니
말 그대로 물질의 평준화, 건강의 평준화, 지식의 평준화,
미모의 평준화가 이루어져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어긋나지 않는 나이는 된 듯합니다.
종심이 되면 서서히 하늘과 가까워지는 나이라니...
폼 내고 가꿔 봐야 그게 그거, 그저 정겨운 친구들뿐이었습니다.
희끗희끗하다 못해 하얀 머리,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머리, 모두들 많이 변하였습니다.
자식들 얘기, 정치 얘기, 잘났던 얘기들을 늘어놓아도
별로 귀담아듣는 사람도 없고, 허공에 맴도는,
그게 다 그거. 이제는 우스운, 대수롭지 않은,
다 흘러가는 얘기들이더군요.
하지만 마음만은 아직까지 이팔청춘 고등학생 그대로였습니다.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잔에 그냥 어우러지는,...
오십여 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엊그제 만난 친구처럼 정겨웠습니다.
모두를 아무 말 없이 다 받아주는 어머니의 다사로운 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경륜은 얼굴에 쓰여 있고,
몸에 배어, 곱게 늙어 가는 여유들이었습니다.
새로운 다짐을 하여봅니다.
추하게 늙으면 안 됩니다.
아프면 안 됩니다.
건강하게 자주 만나야 합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늙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