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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여, 나의 친구야

by Pelex

세월이 깊어질수록 더 그리워지는 이름,
이제는 말로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을
편지처럼 띄웁니다.

서문

젊을 땐 몰랐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친구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저리고 따뜻해지는 이유를.

이제는 돈도, 명예도, 자존심도 다 부질없다는 걸
서로 알 나이가 되었지요.
그래서 오늘, 한 사람의 친구로서
그대에게 마음을 담아 전합니다.

‘친구여, 나의 친구야.’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기를,
마지막까지 웃으며 건네는 인사로 남기를 바랍니다.


세월이 지나도 가슴 깊이 남는 이름,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불러보는 정겨운 부름.


1. 친구여!

이 나이가 되어보니,
‘어머니’ 다음으로 제일 정겹고, 가슴 저리고 아린 단어가
‘친구’인 것 같네 그려.

우리 만난 지도 어언 40~50년이 되었나 보네.
생각해 보니, 한창 잘 나가던 20~30년 동안은
왜 그냥 건너뛰었는지 모르겠네.
그때도 서로 가까이 지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기사, 그 시절 어느 한 친구를 돕지 못한
내 예전의 행위가 영 마음에 걸려,
지금도 그 친구만 보면 항상 죄인일쎄 그려.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친구들끼리 잘난 체 한들, 돈 몇 푼 더 있다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다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일세.

친구도 서운했던 옛날일랑 다 잊어버리고
용서하시게나, 친구여.

이 나이에 되어보니
친구들의 만남이 왜 이렇게 더디고 또 기다려지는지….
이제 우리 얼마나 더 만날 수 있겠는가?
많이 만나 봐야 10년, 15년.

내가 가면, 돈 10만 원 들고 온들 어디다 쓰겠는가?
우리 아직 두 다리 성성할 때,
그 부의금 미리 받아 소주나 한잔하세 그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친구와 나만이 아는 옛날이야기나 실컷 해보세나 그려.

어느 누군가 그러더군.
“잘난 체도 말고, 알고도 모르는 체, 옛날일은 다 잊어버려라.”
하지만 우리끼리는 그 모든 게 다
껄껄껄 웃음 짓게 하는 재미있는 얘기들 아니겠는가.

친구여!
내가 이 나이에 잘한 선택 중 하나는
성당에 다니는 것이라네.
아침, 저녁, 그리고 주일마다
하느님과의 대화가 나의 유일한 낙이 되었네.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모든 것에 감사하라.”


친구여, 건강하시게나.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좋은 것 많이 보고,
좋은 데 많이 다니시게나.

이제는 같이 이야기 나눠줄,
같이 다녀줄 친구들도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시지 않으시는가.

친구여, 부디 건강하시게.

(2015년 5월에)


이제는 용서하고 이해하며,

남은 날을 따뜻하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2. 친구야! 나의 친구야!

억지로 지켜내려 욕심부린

허망한 자존심,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길에
그만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보네.

우정을 말하면서도,
친구라는 이유로 서운한 모습을 보였다 하여
이해하기보다는
내 생각만 앞세워 친구를 원망하고 탓하지는 않았는지 말일세….

친구야, 나의 친구야.
우리 나이 벌써 종심도 훌쩍 지났구먼. 그려
살 만큼 살았는데
뭐 그리 잘나고, 뭐 그리 욕심부리고 집착할 일이 있었던가.

감싸주는 게 무엇인지,
위로해 주는 게 무엇인지,
용기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용서와 배려와 신뢰가 무엇인지,
이제는 구분할 줄 알 나이 아니겠는가.

억지로 지켜내야 할 자존심이 대체 무엇이었던가.
지쳐버린 자존심을 붙들고 있다 한들
무엇을 얻겠는가 말일세.

친구야, 고향 같은 나의 친구야.
남은 세상 너무 짧아서,
억지로라도 용서하지 못할 일도 용서해야 하고,
이해하지 못할 일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친구야, 나의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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