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60대 중반의 다짐을 되새기며
"이 글은 제가 10여 년 전, 60대 중반 무렵에 작성했던 자기소개서의 일부를 발췌하고, 간략한 저의 자서전입니다. 당시의 치열한 고민과 직업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흘러 칠십 대 중반을 맞이하였지만, 글 속에 담긴 '인생 후반전'을 대하는 다짐과 의지는 지금의 저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삶의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록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
“정신없이 뛰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늙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65세입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묻지만, 내게 나이는 인생이라는 긴 트랙의 중간 지점을 표시하는 이정표에 불과합니다.
내가 뛸 수 있는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뛸 수 있을 때까지, 숨이 차오를 때까지 계속 달리는 것.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지난 세월은 나에게 ‘영광’보다는 ‘경륜’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오래 참을 수 있으며,
주어진 일 앞에서는 성실·근면·부지런함, 이 세 가지 원칙으로 살아왔습니다.
이 모든 시간과 경험이야말로,
나를 두 번째 출발선에 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① 맨땅에 헤딩했던 청년, 아쉬운 기회의 순간들
참으로 막막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골 촌놈이 중학교 졸업 후,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누구 하나 물어볼 이 없는 곳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홀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친구 집과 하숙집을 전전하며 살던 그 시절,
만약 나를 이끌어 줄 멘토가 있었다면
지금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람들은 성공을“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말하지만,
제 삶을 돌아보면 오히려 “운구기일(運九技一)”에 가까웠던 듯합니다.
제게도 몇 번의 큰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놓쳤습니다.
관운(官運)
경기도교육청 4급 공무원(現 7급)을 1년 남짓 다니고 그만둔 일은 지금도 가장 큰 후회로 남아 있습니다.
당시 동기들은 최하 과장, 국장까지 승진했습니다.
공기업
주택공사(現 LH) 1등 합격 후 주택연구소 발령을 받고도 한 달 만에 포기했고,
한전(KEPCO) 역시 합격해 연수원 과정을 밟다 그만두었습니다.
특수직
대졸자만 선발하던 군 관련 ○○사 필기 합격.
그러나 군 장성 또는 공무원 국장급 이상의 추천서와 6개월 군사훈련 조건 앞에서 포기했습니다.
사업
큰 부자가 될 수도 있었던 원주 단구동 해○아파트 분양 사업 역시
유독 그해에만 분양 미달이라는 난관을 만나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잘될 길은 피해 가고, 어려운 길만 골라 걸어온 인생이었습니다.
조언자도, 붙잡아 줄 사람도 없던 시절.
운이 없었다는 생각으로 숱한 회한의 밤을 보냈지만,
그 모든 시련의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며 버텨낸 끈기와 독립심,
그것이 바로 건설 현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사업 실패의 뼈아픈 교훈]
내가 건설회사를 접은 이유는 멀리에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멀리 있는 모르는 사람은 아예 믿지 않지만, 가까이 있는 일가, 친척, 친구는 그 자체를 믿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그러했습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시절, OO이 찾아와 동료가 대기업 건설소장으로 공사를 줄 테니
면허를 사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점점 대규모 공사를 가져오면서 공동대표이사까지 하게 해 주었던 것이 결국 잘못되어 부도를 맞았고,
'공사 보증'을 섰던 내가 대신 그 책임을 당했습니다.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나 혼자만이 겪는 고통과 시련이었습니다.
이러한 두서없는 시련의 시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버텨낸 끈기와 독립심이 바로 건설 현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습니다.
② [칼럼] ‘운’에 대한 평생의 의문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급작스레 잘되고 호황을 맞이했지만,
내가 떠난 뒤에는 관·공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그 흐름이 참으로 묘했습니다.
이 또한 운이었을까요, 선택이었을까요.
나의 땀과 열정은 대한민국 곳곳의 건설 현장에 스며 있습니다.
1군 기업인 동○건설산업(주)의 현장기사로 시작해
진○기업(주), 두○종합건설(주)을 거치며
아파트, 고급 빌라, 상가, 사무실 등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현장소장 및 공무 담당으로 일했습니다.
10여 년 만에 임원 자리까지 오르는 경험도 했습니다.
독립적인 도전
직접 (주)서○기업을 설립해
강원도 원주시에 해○아파트(196세대)를 성공적으로 사업 시행한 경험은
시공을 넘어 사업 전체를 이끄는 리더십을 증명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재다능한 현장 경험
시행사, 건설회사, 단종 회사를 운영하며
건축시공, 인테리어, 철근콘크리트, 토공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장 관리와 수주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최근까지도 관급 공사 현장에서
착공계부터 준공 정산서까지 모든 서류 업무를 도맡으며
‘1인 3역’을 너끈히 수행했습니다.
특히 공무 분야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은퇴 이후에도 전 직장으로부터 지속적인 자문 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쌓아 온 실력과 신뢰의 방증이라 자부합니다.
이제는 현장에서 직접 흙을 밟고 뛰기보다는,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장을 책임지고 이끄는 역할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현장대리인, 공사감독, 공사감리원으로서
제 연륜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용기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이다.”
인생 후반전,
나는 아직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입니다.
남은 날들을 설렁설렁, 대강대강 보낼 수는 없습니다.
체면과 자존심은 기꺼이 내려놓고,
다시 한번 경제 활동을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 현장에 나섭니다.
이 선택이
나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도
올바른 길임을 확신합니다.
멈추지 않는 나의 발자국
70대의 나이에 다시 쓰는 이 글은
단순한 회고가 아닙니다.
“인생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의 연속이다.”
이 믿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선언문입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저는 행동으로 증명하며 살고자 합니다.
현재 저는,
(주) ㅇㅇㅇㅇㅇ씨엠 건축사사무소의 감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적성에 꼭 맞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경륜과 열정을 쏟아
인생 후반전의 완주를 단단히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멈추기보다 다시 선택하는 쪽을 택해 온 한 사람의 기록이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부디,
저의 성실한 발자국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