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다 문득,
내 안의 우물이 말라갈 때

by 펠렉스

잠결에 문득 일어나 생각에 잠깁니다.

'내 글의 장르는 대체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누군가의 서평 한 줄 받아본 적 없으니, 여태껏 내가 쓴 것이 글인지 그저 흩어지는 잡소리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글다운 글을 쓰긴 했던 것인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브런치의 매끈한 글들 사이에서 나처럼 쓰는 사람은 보이지 않아 마음이 서성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려운 단어나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한 문장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쉽고 솔직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누구라도 가슴이 떨릴 수 있는 말을 피를 토하듯 뱉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십여 년 전, 카페 글들이 한참 유행하던 시절에 나는 참 많은 글을 썼습니다. 이곳저곳에 끄적였던 내 문장들은 누군가를 슬며시 웃게도 하고, 때로는 눈물짓게도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런 결의 단어들을 끄집어내어 이 각박한 세상 속에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움을 토해냈습니다. 어느 트로트 가수의 절절한 울림처럼, 사람의 마음을 직접 건드리는 그런 글들을 나는 분명히 써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지난날 카페 이곳저곳에 흩어놓았던 그 시절의 파편들을 다시 가져와 다듬을 소재조차 사라져 갑니다.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쓴 탓에 이제는 쓸거리도 거의 소진되어 버렸습니다.

우물이 말라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내 글의 유일한 친구는 결국 '내 속의 나', 내 가슴속의 친구였다는 사실을요. 아마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또 다른 나를 부르는 지독한 외로움의 몸짓이었을 겁니다. 이기적인 내 마음을 '친구'라는 단어에 쏟아붓고 싶어서, 그렇게 나를 토해낼 진짜 친구 하나 곁에 없어서 글을 붙들었나 봅니다.

현실의 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아낍니다. 혹여 내 실수로 상대가 불편해질까 봐 미리 경계하고 조심합니다. 농담조차 삼가며 스스로를 검열합니다. 무의식적으로 항상 나를 경계하며 살고 있습니다. 침묵은 언제나 중간은 가게 마련이고, 상대방도 나를 딱 그 '중간'만큼으로만 대합니다.

자존심 덩어리인 내가, 구김 없이 손 안 벌리고 남에게 피해 안 끼치며 참으로 착하게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성실한 침묵 끝에 마주한 “PQ(마음의 대기 시간)”에 지쳐갑니다.

내 안의 창고는 비어 있고, 기다림은 길어집니다. 쏟아낼 곳 없는 진심이 갈 곳을 잃어 서성이는 이 새벽, 나는 마른 우물을 들여다보며 다시 묻습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토해내야 합니까. 아니, 누가 이 지독한 대기의 끝을 함께 해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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