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이란 놈, 요즘 아주 근면하네.
눈치도 없이 자리만 생기면 바로 눌러앉더군.
어제는 눈가에 하나, 오늘은 이마에 둘.
이쯤 되면 관리 대상이 아니라,
이미 한집에 사는 공동 거주자라네.
그래서 슬쩍 한마디 건네보았지.
"이보게, 너무 욕심부리지 말게.
여기는 이미 만실(滿室)이라네."
그러니 자네도 이것저것 너무 따지지 말고,
그냥 되는 대로 웃으며 살게나.
친구를 만나면 안부보다 농담부터 툭 던지고,
밥값은 누가 냈는지 서로 기억 못 해주는 게
우리 나이의 예의 아니겠나.
그러다 누가 "요즘 얼굴 좋아졌네?" 하고 띄워주면,
사양 말고 얼른 받아 적으시게.
그건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공짜 보약이니까.
요즘은 기분이 좀 묘하더군.
청첩장은 뜸해지는데, 부고장은 부쩍 늘어나니 말이네.
어느 친구는 그러더군.
친구 부고가 와도 장례식장엔 가기 않겠다고.
다녀오면 며칠을 마음이 무거워져서 싫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대꾸했지.
"그래, 그럼 오래 살아서 남들 다 보낸 다음에 가라 “
그랬더니 한참을 껄껄 웃었다네,
사실 요즘은 끝까지 웃는 게 참 어렵네.
아무튼 자네,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왜 이렇게 폭삭 늙었나" 같은 말은 삼가시계.
그건 인사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짐 하나 더 얹는 일이라네.
나이 한 살 적다는 자랑도 이제 그만하게나.
먼저 가면 형님이라지만, 요즘은 그 자리도
벼슬이라기보다 묵직한 짐처럼 느껴지니 말일세.
자식 자랑이야 애교로 봐주겠지만, 손주 이야기까지 길어지면
자네는 그날로 독백 연극을 하는 셈이야.
청중은 한 사람인데, 막(幕)이 너무 길면 곤란하지 않겠나.
그래도 뭐 어떤가, 그게 다 우리가 살아가는 낙인 것을.
오늘도 우리는 주름과 적당히 타협하고,
칭찬 한마디에 금세 마음이 풀어지며 살아간다네.
그럭저럭 괜찮은 얼굴로 세상도 좀 속여보고,
나 자신도 살살 다독여가며 말이지.
그러니 자네, 거울 앞에 너무 오래 서 있지 말게나.
이 얼굴로 여기까지 무사히 왔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실컷 웃다가도 때로는 멈출 줄 아는 나이,
그 정도면 우리, 참 잘 살아온 것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