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2

by Pelex

엊그제 추석에 고향을 다녀온 후

온종일 생각이 많아 머리가 띵하네요.

형제들도 이제는,

어린 시절 그 형제가 아닙니다.

피붙이인 동생들이야 억지로라도 형이라 부르겠지만,

제수씨들의 말과 행동은

도무지 마음에 담을 수 없더군요.

잔소리 한마디 하려다

괜히 분위기만 험해질까 꾹 참았습니다.

장손 체면도 있고 말이죠.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입니다.

밥도 먹기 싫었지만

어머님이 섭섭해하실까 봐 억지로 숟가락을 들고 왔는데,

소화가 될 리가 있습니까.

어머님 돌아가시면

그 길로 고향과도 작별일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종부 노릇 못한 것도,

내 아들이 장손 역할을 못한 것도

결국은 다 제 탓이겠지요.

아내는

“딸아이 병시중에, 무능한 남편 때문에 먹고살려고 그랬다.”며

모든 걸 내 영역 밖이라 하지만,

아들 녀석까지 그러는 건 왜 그럴까요.

성에 차는 짓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며 속만 끓입니다.

남들은 아들 자랑에 열을 올리는데

나는 아들 자랑 한 번 못 해봤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자식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모든 걸 주고도,

며느리한테까지 소외당하며

최저의 삶조차 지켜내기 힘든 우리 세대.

그게 어디 남 얘기이겠습니까.

내 얘기이고, 내 업보이며, 내 탓이지요.

친구여!

세월이 벌써 이만큼 흘렀군요.

내 나이도 어느덧 이순.

그 꿈 많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죽으면 몇 푼 들고 머물다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잊히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요.

이제 와 현실을 탓한들 뭐 하겠습니까.

친구가 오늘따라 참 그립습니다.

할 말 없어도 좋습니다.

그저 얼굴을 보고,

함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넉넉해지는 사이였으니까요.

더 늙기 전에,

제 발로 걷고,

제 돈으로 소주 한잔이라도 살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봅시다.

퇴색해 가는 우정을

다시 한번 불씨 삼아 피워내 봅시다.

지친 마음 어루만지고,

말없이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그게 우리가 지금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아닐까요.

퇴근길에 전화 한번 하시게.

소주 한잔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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