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추석에 고향을 다녀온 후
온종일 생각이 많아 머리가 띵하네요.
형제들도 이제는,
어린 시절 그 형제가 아닙니다.
피붙이인 동생들이야 억지로라도 형이라 부르겠지만,
제수씨들의 말과 행동은
도무지 마음에 담을 수 없더군요.
잔소리 한마디 하려다
괜히 분위기만 험해질까 꾹 참았습니다.
장손 체면도 있고 말이죠.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입니다.
밥도 먹기 싫었지만
어머님이 섭섭해하실까 봐 억지로 숟가락을 들고 왔는데,
소화가 될 리가 있습니까.
어머님 돌아가시면
그 길로 고향과도 작별일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종부 노릇 못한 것도,
내 아들이 장손 역할을 못한 것도
결국은 다 제 탓이겠지요.
아내는
“딸아이 병시중에, 무능한 남편 때문에 먹고살려고 그랬다.”며
모든 걸 내 영역 밖이라 하지만,
아들 녀석까지 그러는 건 왜 그럴까요.
성에 차는 짓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며 속만 끓입니다.
남들은 아들 자랑에 열을 올리는데
나는 아들 자랑 한 번 못 해봤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자식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이 실감 납니다.
모든 걸 주고도,
며느리한테까지 소외당하며
최저의 삶조차 지켜내기 힘든 우리 세대.
그게 어디 남 얘기이겠습니까.
내 얘기이고, 내 업보이며, 내 탓이지요.
친구여!
세월이 벌써 이만큼 흘렀군요.
내 나이도 어느덧 이순.
그 꿈 많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죽으면 몇 푼 들고 머물다 가는 것이 우리 인생.
잊히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요.
이제 와 현실을 탓한들 뭐 하겠습니까.
친구가 오늘따라 참 그립습니다.
할 말 없어도 좋습니다.
그저 얼굴을 보고,
함께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넉넉해지는 사이였으니까요.
더 늙기 전에,
제 발로 걷고,
제 돈으로 소주 한잔이라도 살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봅시다.
퇴색해 가는 우정을
다시 한번 불씨 삼아 피워내 봅시다.
지친 마음 어루만지고,
말없이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그게 우리가 지금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 아닐까요.
퇴근길에 전화 한번 하시게.
소주 한잔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