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 직장을 24년 동안 다녔다.
직장 생활 내내 성실함을 자랑으로 여기셨다.
모범상도 수차례 받으셨다.
독감에 걸려 휘청거려도, 1시간 30분 거리를 출근하셨다.
출근 도장은 꼭 찍고 와야 했다.
"돈을 받는 사람은 그 정도는 해야지."
그게 엄마의 자부심이었다.
나이가 차고, 손목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면서 쫓기듯 회사를 나오셨다.
"잘됐어요.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 문화센터도 다니고 쉬세요."
하지만 엄마는 퇴직 후의 여유를 즐기지 못하셨다.
되레 일터가 없다는 사실에 불안해하셨다.
오랜 세월 통제받는 시간을 보내서 일까.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라하셨다.
칼림바 수업, 댄스 스포츠, 노래 교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수해 드렸다.
기대와 달리 오래 다니지 못하셨다.
멈춰 있는 것이 불안하셨던 걸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셨다.
이전부터 건망증, 반복적인 질문, 엉뚱한 말씀을 하시곤 했지만 필기, 실기를 한 번에 패스하시는 걸 보고 안심했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만두시길 반복했다.
"어차피 이제 엄마 나이에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에 퇴근하는 건 무리예요. 내년부터 국민연금도 나올 테니, 짧게 일하고 몸에 무리 없는 일을 찾으셔야 할 것 같아요."
"나도 느껴. 이제 의지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근데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찾을 수나 있어야 말이지."
일을 멈춘 지 두 달.
엄마의 생활 리듬이 무너졌다.
가끔 낮에 전화드리면 잠에서 깨다 만 목소리로 받으셨다.
주말에 엄마 집에서 자고 온 아들이 말했다.
"할머니 낮잠을 너무 자주 자."
"엥? 얼마나?"
"하루에 2~3번?"
"너랑 있는데도?"
"응. 밖에 나가자고 하면 더워서 싫대."
"엄마 밖에서 걷는 거 좋아하시잖아. 3일 동안 어디 안 갔어?"
"응. 계속 집에만 있었어. 가끔 마트만 갔다 오고."
30여 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새벽 5시 알람.
이제 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있었다.
낮에 쪽잠을 자시니 밤잠을 설치셨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부정적인 생각들이 밀려오셨나 보다.
과거 가슴 아팠던 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어떤 날은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식습관이었다.
엄마는 말릴 수 없는 밥순이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도 꼭 밥, 국, 김치를 챙겨 드셨다. 간식이라면 떡 정도.
라면이나 탄산음료는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그런 엄마가 아침을 과자, 빵으로 때우기 시작하셨다.
귀찮아서일까, 식성이 달라지신 걸까. 그렇게 식성도, 생활 습관도 조금씩 달라졌다.
같은 말을 몇 분 안에 반복하고, 없는 사실을 철석같이 믿는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사실이 아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기도 하고, 감정에 북받쳐 토로해 보기도 했다.
아마도 이 기간 동안 치매가 많이 진행됐던 것 같다.
이때를 놓친 것이 지금도 괴롭다.
엄마의 망상은 점점 심해졌다.
치매 환자 가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기억력 감퇴와 망상으로 인한 상황들.
특히 망상은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와 가족을 옥죈다.
그러던 중 찾게 된 일이 아파트 청소였다.
나와 아내는 처음엔 반대했다.
'청소일'이라는 것 자체에 편견을 가졌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업신여기진 않을까 염려했다.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고, 추위와 더위에 고생하실 텐데.
"엄마, 청소는 너무 힘들지 않아요?"
"낯선 아파트에서 몇 동인지, 몇 층인지 헷갈리지 않겠어요?"
하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해볼게.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되지."
우려와 달리, 청소일을 시작하고 엄마에게서 긍정적인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아침 식사를 다시 밥으로 꼬박 챙겨 드셨다.
일터에서 함께 나눠 먹을 요량으로 다양한 반찬도 만드셨다.
요리는 장기 기억을 자극하고 정서적 안정을 준다고 한다.
요리는 다양한 감각을 깨운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요리를 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손자가 할머니 닭볶음탕을 제일 좋아해요."
그러면 어떻게든 만들어 주시곤 했다.
낮에 일을 하니 자연스레 낮잠이 줄었다.
열심히 에너지를 쏟아낸 만큼, 9시쯤부터 하품이 나오셨다.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시던 과거의 아픈 기억들, 불안함에 의한 우울 증상도 감소했다.
회사 다닐 때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면서 생활 리듬을 되찾으셨다.
일 자체로 피곤하실 텐데 운동까지 하실 여력이 있을까 걱정했다.
기우였다.
점핑, 스포츠 댄스 수업도 다시 시작하시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셨다.
엄마가 일해서 번 돈으로 하나뿐인 손자에게 옷, 신발, 음식을 사줄 수 있다는 기쁨.
그게 생활에 활력을 준 듯했다.
아들이 수영을 배우고 싶어 했다.
2년째 시립 수영장 강습을 신청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사설 수영 강습은 주 2회에 30만 원이 넘어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 아직 능력 있잖아."
할미가 수영 강습 보내줄 거라며, 매달 강습료를 보내주신다.
치매 어르신에게 '일'이 도움이 된다 해도, 억지로 등 떠밀어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치매 판정 앞에서도, 엄마는 희망을 찾으셨다.
가만히 멈춰 있기보다 행동하고,
절망 속에서도 감사함을 찾으셨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녀의 의지다.
그리고 나는 배운다.
포기하지 않는 엄마에게서.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작은 시도가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