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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가족 돌봄 실천법 1

하루 일과 짜기, 하나씩 대화하기

by 공감수집가

치매 가족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치매라는 이름은 한 사람의 기억을 천천히 가져간다.

일상이 무너지고, 알고 있던 모습이 점차 흐려지는 순간들.

그 빈자리는 낯선 혼란과 아픔으로 채워지고, 곁에 있는 가족들의 마음도 깊이 흔들어 놓는다.

때로는 지친 숨소리가 깊어지고, 이해와 인내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우리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시행착오와 수없이 반복되는 좌절 속에서도,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하루 일과 짜기

치매와 함께 하는 가족을 위한 실천법_하루 일과 짜기.jpg 치매 가족 실천법 : 하루 일과 짜기

치매 환자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은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혼자 산책은 가능한지, 식사는 챙기실 수 있는지,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아직 남아 있는 기억과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인내를 갖고 돕는다.

아침 산책, 화분에 물 주기, 좋아하는 반찬 요리하기, 가벼운 운동, ATM에서 돈 찾기, 동네 빵집에서 좋아하는 빵 고르기,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행동하면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일과를 계획하는 것이다.

욕심이 앞서서 치매에 좋다는 악기 연주, 단체 활동 등을 강요하지 말자.


엄마는 청소일을 시작하시며 다시 활기를 찾으셨다.

규칙적인 일과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하지만 이전에 여러 일을 시도하셨다가 3개월을 버티지 못한 적도 있었다.

실수가 잦아지고 왜곡된 기억으로 인해 힘들어하셨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무료함과 뒤섞인 기억의 혼란 속에 엉뚱한 이야기가 늘어나셨다.


많은 치매 환자들이 겪는 망상은 장기 기억과 단기 기억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지갑을 갖고 있었다는 오래된 기억은 생생히 남아 있지만, 최근에 지갑을 어디에 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두 기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도둑 망상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엄마는 점점 밤낮이 뒤바뀌었고, 새벽마다 불안과 초조함이 묻어나는 문자들을 보내곤 하셨다.

그런 상황 속에서, 엄마를 안정시키고 하루를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작은 미션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엄마,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오전에 아파트 안에 있는 도서관 한 번 다녀오시면 어때요?"

하루에 하나씩 작은 목표라도 달성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오후, 나른함이 밀려올 시간에는 카톡으로 노인 건강체조 영상을 보내드렸다.

"식사는 하셨어요? 가볍게 움직이고 몸 좀 풀어 볼까요?"

또는 젊은 시절 엄마가 즐겨 들으시던 카펜터스의 음악 링크를 보내드리며, 추억의 감정을 자극해 본다.

작은 관심과 배려가 모여, 엄마의 하루는 조금씩 평온해졌다.

중요한 것은 큰 변화를 강요하지 않고, 천천히 지금의 리듬에 맞춰가며 하루를 채워가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도 많을 것이다.

그럴 때는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씩 간결하게 대화하기

치매와 함께 하는 가족을 위한 실천법_하나씩 간결하게 대화.jpg 치매 가족 실천법 : 하나씩 차근차근 대화하기, 문자나 사진 남기기

안쓰러운 마음에 잔소리를 한꺼번에 쏟아내곤 했다.

"냉장고 반찬은 아까워하지 말고 이상하다 싶으면 과감히 버리세요."

"양산이 매번 없다 하지 말고 현관에 두세요."

"오후에는 더우니까 오전에 다녀오세요."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들은 아들이 말한다.

"할머니가 이해하고 대답한 거 맞아?"

그 말에 멍해졌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해야 할 일을 문자로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기로 했다.

말은 잊어버리기 쉽지만, 문자는 남으니까.

길게 쓰기보다 개조식으로, 순서대로, 간단하게 적었다.


예를 들면:

은행 가서 점핑 수업료 12만 원 계좌 이체 구청역 4번 출구

구청 3층에 가서 노인 일자리 알아보기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의 신경과 약이 3일분밖에 안 남았는데, 업무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약을 며칠 못 드셔도 어쩔 수 없다. 주말에 내가 모시고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고민하던 내게 아내가 말했다.

"어머님이 혼자 다녀오시면 어때? 병원 근처 식당도 자주 가셨고, 충분히 하실 것 같은데? 모르는 게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시면 되잖아."

아내 말이 맞았다.

그래서 엄마가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구체적인 내용을 문자로 보냈다.


문자 내용:

○○ 솥밥집 사거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

2층 신경과 진료 처방전 들고 병원 출구 오른쪽 약국 들러서 약 받기


진료 당일, 나는 일하는 내내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며 초조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과는 성공이었다.

혼자 병원에 온 엄마를 보고 의사 선생님은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그날 우리 집은 축제 분위기였다.

엄마도 환하게 웃으셨다.

나는 그 웃음을 보며 느꼈다.

잔소리로 옭아매는 대신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엄마를 위한 진정한 배려라는 걸.



2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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