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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가족 돌봄 실천법 2

그럴 수 있다 받아들이기, 넛지 효과, 부정 대신 긍정, 질문보다 답주기

by 공감수집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내가 아는 상식을 기준으로 치매 환자의 행동을 판단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차근차근 설득하면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통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내 기대를 빗나갔다.

당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다음 날이면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화를 내기도 하고, 허탈함에 한숨만 내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엄마조차 어쩌지 못하는 하나의 증상이라는 것을.


치매를 앓고 계신 부모님과 논리적으로 다투거나 설득하려 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는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부모님의 말과 행동 이면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자고.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바꿔보자.

혹시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다면, 부모님이 다시 아이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보자.

아이가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거나 실수를 해도 우리는 화를 내기보다 기다려주곤 했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생각하면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도 조금 더 인내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사건이나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부모님의 슬픔, 당황스러움, 그리고 불안감을 헤아리는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넛지 효과: 부드럽게 유도하기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부드럽게 행동을 유도하는 넛지 효과를 떠올려 보자.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으로, 강요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역 계단을 피아노 건반처럼 꾸며 계단을 오르는 재미를 주며 건강을 유도하는 방식처럼, 부모님에게도 '슬쩍 부드럽게' 다가가는 것이 핵심이다.


외출을 거부하실 때:

"어? 저 건물 색깔이 낯익지 않아요? 엄마가 좋아하는 노란색 건물이죠? 저 건물 지나서 편의점까지만 다녀오면 돼요. 편의점부터는 엄마도 잘 아시잖아요."


손주를 핑계 삼아:

"손주가 놀러 오면 나가자고 조를 텐데, 엄마가 산책로를 알아둬야 붕어빵도 사주고 그러지 않겠어요?"


음식 만들기를 유도하며:

"이번 추석에도 엄마 식혜만 기다린다던데요. 이참에 손자랑 같이 식혜 만들어 보면 어때요?"


이렇게 슬쩍, 부드럽게 다가가 보자.

부모님 마음속 책임감이나 관심사를 살짝 자극하면 때로는 고집스러운 벽을 넘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강요가 아니라 부모님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돕는 것이다.


치매 가족 돌봄 실천법 2-1.jpg 치매 가족 돌봄 실천 : 손주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부정 대신 긍정 말하기

우연히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사이먼 사이넥의 강연을 본 적이 있다.

그의 강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그것을 더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키 선수는 "나무를 피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눈길을 따라가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길만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소파에서 먹지 마라" 대신 "식탁에서 먹어라"가 더 효과적인 이유와 같다.


엄마가 한동안 잘못된 버스 번호를 기억하거나 엉뚱한 관공서를 반복해서 떠올리실 때가 있었다.

"23번 버스가 아니라 80번 버스라고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80번 버스를 타시면 중앙 시장까지 갈 수 있어요."라고 안내했을 때 더 효과적이었다.


"아침부터 몽쉘통통은 건강에 안 좋아요. 많이 드시면 안 돼요."보다는

"아침에 입맛이 없으면 고구마를 삶아 드시면 어때요?"


이렇게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꿔보니, 엄마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졌다.

반복 연습을 통해,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온 뒤 3개월 만에 마트, 베이커리, 지하철역, 병원, 단골 음식점 정도는 혼자서 찾아가실 수 있게 되었다.

종종 좋아하는 옥수수나 떡을 사놓고 아침 대용으로 소분해서 드시곤 한다.



질문보다 답을 주기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님이 시간이나 장소에 대해 반복해서 물을 때, "한번 기억해 보세요."라는 말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 입장에서야 부모님의 기억력을 높이거나 답을 유도하고 싶은 마음에 스무고개 하듯 질문을 이어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오히려 혼란을 부른다.

대답이 막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거나 다그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틀린 답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 이미 알고 있던 정보마저 더 헷갈리게 될 뿐이다.

대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특정 건물, 숫자, 색깔을 기억하게 하거나, 아주 간결하고 정확한 답을 알려주는 것이 좋다.

이 방법들이 엄마를 위한 길잡이가 되었다.



3편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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