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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밤, 기억의 이야기들

새벽 4시의 문자, 유튜브의 함정

by 공감수집가

새벽의 문자들

새벽에 생뚱맞은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너는 왜 나더러 장례식장에 가보라 했니?"

"모르는 사람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막막하던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어."

시간은 새벽 4시 27분.

엄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어떤 날은 적금 얘기가 왔다.

"손주 적금 해약할 거야."

"적금요?"

"매달 40만 원씩 넣고 있었잖아. 대학 등록금 만들어주려고 넣은 돈. 내가 현금으로 갖고 있어야겠어."

그 적금은 몇 년 전에 해지했었다.

"몇 년 전 해지한 적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해지했다고? 그럼 그 돈은 지금 어딨어?"

엄마는 말했다.

"내가 보이스피싱 당했나 보다…"


유튜브의 함정

그제야 알았다.

엄마가 보고 있던 유튜브 콘텐츠의 정체를.

썸네일부터 충격이었다.

AI로 만든 듯한 인위적인 그림.

제목은 더욱 자극적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관 뚜껑 열릴 뻔한 일'

'현대판 고려장, 자식을 믿은 죄'

'보이스피싱의 정체, 믿었던 며느리가'


내용은 더 가관이었다.

막장 드라마 뺨치는 이야기.

여성의 건조한 음성과 특유의 억양은 누군가를 본뜬 듯 섬뜩했다.

엄마는 그런 영상 속 이야기들을 자신의 기억 파편과 뒤섞어가며 밤마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직장에서의 혼란으로 힘들었는데, 극단적인 내용의 영상에 노출되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려진 것이다.

치매 환자에게 콘텐츠는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뇌에 들어가는 '정보'다.

이런 질 떨어지는 콘텐츠는 엄마에게 독이었다.


luke-scarpino-4DTWD1ivkPs-unsplash.jpg 엄마의 밤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워지면 좋겠다.


정보의 질을 바꾸다

나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첫째, 일기를 써보도록 권유했다.

"하루에 한 문장만이라도 글로 적어 보세요."

그렇게 시작한 노트가 벌써 두 권째다.


둘째, 광고 없는 라디오 앱을 설치했다.

이젠 화면을 잘못 눌러도 이상한 데로 가지 않는다.

엄마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과 말소리에 집중하셨다.


셋째, 유튜브를 선별해서 먼저 보내드린다.

아침엔 건강 체조 영상.

낮엔 김창옥 강연.

때론 젊은 시절부터 좋아하셨던 카펜터스와 같은 올드 팝이나 고전 영화의 명장면.

언젠가 김미경 강사의 강연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나도 다시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불안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밤엔 숙면을 취하기 시작하셨다.

다시 소소한 미션들도 드렸다.

감사한 일 5가지 적어보기

손자 핑계 삼아 다양한 반찬 만들기

뇌 훈련 숫자 놀이

숨은 그림 찾기

색칠 공부 하기

혹시나 엄마 머릿속에 있는 안 좋은 기억의 찌꺼기를 지워낸다는 기분으로, 아이패드로 꽃 그림을 그려서 보내기도 했다. 과거의 좋았던 추억담을 문자로 써서 보내면 그렇게나 좋아하셨다.

엄마도 수줍게 답문을 보내주셨다.


정보가 곧 환경이다

우리는 치매 어르신의 건강을 지킬 방법을 병원, 약, 운동에서 찾는다.

하지만 또 하나 바꿔야 할 것은 '주입되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유해한 정보는 기억을 흩트리고,

선한 정보는 마음을 다독인다.

엄마의 회복은 '말과 글'을 바꾸는 데서 시작됐다.


일을 시작한 것도 좋았지만,

밤 시간의 정보 환경을 바꾼 것도 엄마에게 안정을 주었다.

낮의 활동과 밤의 평온.

둘 다 필요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엄마는 여전히 가끔 혼란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도 하고, 없는 기억을 확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완벽한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조금씩, 하나씩 나아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치매 환자에게 필요한 건,

평온한 낮과 안정적인 밤.

그리고 그 속을 채우는 좋은 정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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