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올빼미형 인간이었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습니다. 잠은 또 어찌나 많은지, 말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대충 살았다는 건 아닙니다. 제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고 나름 성과도 있었습니다. 사는 게 그리 녹록치는 않았지만, 꾸역꾸역 살아내는 중이었지요. 사람이 살면서 '위기'라는게 오더라구요. 3년 전쯤 입니다. 하는 거 마다 안되는 겁니다. 집을 사면 끝을 모르고 값이 떨어지고, 투자 한 곳은 수천의 손해가 나고, 남편이 하는 사업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발버둥을 칠 수록 늪에 빠지는 기분이랄까요. 숨을 못 쉬겠더군요.
한 동안 무기력한 마음과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고작 이것밖에 안되나 싶더라구요. 사는 게 내 뜻대로 안된다는 기분이 드니까,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운'이라는 건 정해져있는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처럼 운없는 사람은 뭘해도 안된다며 스스로를 괴롭혔지요. 자연스럽게 집안 분위기가 어두워졌습니다. 하나 있는 아들도 느꼈을겁니다. 지금 10살이니까, 7살 쯤 일이네요. 남편과도 말다툼을 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남편에게 나쁜말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착한 남편인데 말이죠.
하루는 아이가 책상에 앉아 있는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계속 뽑고 있는 겁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제법 큰 원형 탈모가 생겼지 뭡니까. 인터넷에 찾아봤습니다. '발모광'이라더군요.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고 합니다. 나로 인해 아이가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글로 다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무슨짓을 하고 있었나 싶더라구요. 저녁에 아이를 재우면서 약을 발라 줬습니다. 그리고는 독한 다짐을 했습니다. 이제 절대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구요.
방법을 찾다가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따라했습니다. 미라클모닝도 시작하고, 한자공부도 시작하고, 부족했던 영어공부도 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더이상 나태하게 살지 않겠다고, 아들에게 다짐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했던 루틴이 지금 850일이 다 되어 가네요. 루틴중에는 새벽 독서모임도 있습니다. 실은 새벽에 너무 잠이 와서 궁여지책으로 끼워 넣은 루틴입니다. 독서모임을 하고부터는 꾸벅꾸벅 조는 일이 없더라구요. 어제도 '민음사피아'라는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마지막 시간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암흑천지가 되었습니다. 처음있는 일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보니까 일대에 정전이 된 것 같더군요. 멤버들에게 결국 취소문자를 보냈습니다.
우습지요. 글감 하나 생겼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전 같았으면 독서 모임이 취소되어서 속상했을겁니다. 웬일인지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아무것도 안보이는 이 상황이 재미있기도 했구요. 정전 덕분에(?) 모임은 취소됐지만, 오전에 있을 강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행히 휴대폰에 자료가 있어서, 연습하는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위기'를 만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생기구요. 계획했던 대로 안 되면 속상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 처럼요. 예전보다는 조금 의연해졌습니다. "인생은 계속 좋을 수도 없고, 계속 나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지나기가 마련입니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내가 할 일을 해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생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못견디게 힘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숨이 쉬어집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걸어나가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