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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Apr 09. 2022

이기적 유전자

밴타블랙

밴타블랙은 ‘가장 검은색다운 검은색’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색이 아니다.

( 팬톤 등록 번호도 없다. )


무슨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밴타블랙은 아주 미세한 슈퍼 탄소 단섬유가

수직으로 정렬된 나노 튜브로 가득 차 있는 물질로

아주 정교해서 만지는 즉시 나노 튜브가 붕괴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밴타블랙은 가시광선의 99.965퍼센트를 흡수함으로써

3차원의 입체적인 물체를 완전히 2차원의 평면적인 블랙으로 보이게 하는

마법과 같은 색이다.


이 획기적인 칼라에 욕심을 부린 예술가가 있었다.


애니시 커푸어는 2014년 자신의 작품에만 이 안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밴타블랙 제조사에 거액을 주고 독점 사용 허가를 따내서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예술 프로젝트 연작을 제작하였다.


극도로 이기적인 애니시 커푸어에 화가 난 동료 예술가 스튜어트 셈플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통쾌한 복수를 시작하였다.


스튜어트 셈플은 ‘세상에서 가장 분홍색다운 분홍색’을 시작으로

‘가장 노란색다운 노란색’, ‘가장 초록색다운 초록색’, ‘가장 파란색다운 파란색’을 생산하였고,

2019년에는 밴타블랙처럼 가시광선의 98-99퍼센트를 흡수하는

블랙 3.0 ‘세상에서 가장 광택이 없는 검은색 아크릴 도료’를 출시하면서

이 모든 안료를 킥스타터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구매할 수 있게 하였다.


단, “ 이 재료를 애니시 커푸어에게 넘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조건에 동의해야만 했다.


스튜어트 셈플은 지구 상에서 애니시 커푸어만 쓰지 못하는 색을 계속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이 일련의 복수극을 보고 있자니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가 떠오른다.


애니시 커푸어는 분명 이기적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예술계에서 미움을 한 몸에 받았다.

동물 영역에서 공동체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리처드 도킨슨, 자크 아탈리가 말하는 것처럼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사실은 극히 이기적인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다.


애니시 커푸어는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것이라는 것을 몰랐던 헛똑똑이였다.


요즘에도 ‘착하게 살면 나만 손해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헛똑똑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본다.


그래서 이기적으로 살면 정말 행복해질까? 반문하고 싶다.


사회는 유기체이다.

공동체의 아픔은 돌고 돌아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타적으로 사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이기적으로 살기 위함인 것인데...

헛똑똑이들이 만들어가는 이기적인 사회가 안타깝기만 하다.


*** 앞으로 '색에 대한 잡념들'매거진은 티스토리 달달 디자인 연구소 daldal design laboratory 에서 이어갑니다.

 https://daldal-design.tistory.com




* 이미지 출처 : 예술가들이 사랑한 컬러의 역사, 데이비드 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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