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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May 14. 2022

색과 언어

호메로스는 바다를 표현할 때 ‘와인처럼 짙은 바다’라고 표현했단다. 호메로스 작품의 무수한 영어 번역본에 ‘짙푸른 파도’라는 문구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푸르다’는 의미는 번역자가 임의로 집어넣은 것이란다. <온 컬러>의 저자는 그 당시 그리스인의 색각이 진화론적으로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색을 나타내는 어휘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창세기 2장 20절)


무언가가 존재하면, 이름이 생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파랑이 있으라 하셨으나, 그것에 이름을 붙인 것은 인간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은 두 눈과 뇌로 색을 인식하고, 그 색은 특정 질병이 없는 한 모두에게 동일하게 인식될 것이다. 다만 그 스펙트럼을 표현하는 어휘는 지극히 관습적이고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을 뿐이다.


나의 지난 글 < 감정의 언어화 >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언어는 참 신기해서 우리가 신체적, 감정적으로 느끼는 추상적인 것들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단어와 어휘들을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앞서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디테일한 감정들을 하나의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하길 좋아한다.

“ 헐~ “ “ 대박 ” “ 존나 “ “ 킹 받네 “  “ 개짜증 “ 등등...

그나마 속상하고 화나고 짜증 나는 감정들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있지만, 기쁘고 환희에 차고 행복을 느낄 때 사용하는 단어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글은 전 세계 전문가들인 인정 하듯 정말 우수한 언어이다. 기호학적이고 과학적인 우수성 외에도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들이 있어서 사고를 확장시켜준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색채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yellow, yellowish로 표현되는 색에 대한 우리말 표현으로는 ‘노랗다’를 기본으로 해서 ‘누렇다’ ‘뉘렇다’ ‘뇌랗다’ ‘뇌란허다’ ‘놀하다’ ‘노리끼리하다’ ‘누리끼리하다’ ‘샛노랗다’ ‘노르다’ ‘노르께하다’ ‘노르스름하다’ ‘누르스름하다’ ‘노릇노릇하다’ ‘노랑노랑하다’ 같이 국어사전에 등록된 공식 어휘 말고도 ‘누리딩딩하다’ ‘노리까리하다’ 등 비공식적인 어휘수를 생각해보면, 한글이 정말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롭고 풍부한 어휘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된다.


색채 언어가 단순한 문화권과 그와 반대로 색채 언어가 다양한 문화권에서는 분명 색에 대한 감수성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빛의 스펙트럼의 미묘한 차이를 언어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색채에 자유로울 수 있고 그 자유로움은 문학과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도 풍부한 감성으로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글이라는 축복받은 언어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건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언어가 단조로워지고 축소되어감으로써 소멸의 시대를 맞이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사용하는 언어의 단어와 어휘가 단순해질수록, 사고도 단순해진다. 그리고 감정과 감성도 축소된다.

물질적 풍요로움만 추구할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사고와 감성의 영역을 확장시킴으로써 삶이 더욱 풍요로워졌으면 좋겠다.



*** 앞으로 '색에 대한 잡념들'매거진은 티스토리 달달 디자인 연구소 daldal design laboratory 에서 이어갑니다.

 https://daldal-desig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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