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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Sep 26. 2022

노안

40세 즈음에 노안이 왔다.


작은 글씨를 읽어볼라치면

눈꺼풀은 실 한가닥만 하게 찌그러지고

글자를 든 손은 이미 저만치 가 있고

글씨 하나 읽는 것도 힘들어져 짜증 난 입술은

눈꺼풀과 함께 일그러져

못난이 얼굴이 되곤 한다.


노안이 오면서부터

핸드폰의 폰트 사이즈가 커지고

컴퓨터의 화면비율이 커졌다.


뉴스에서도 큼지막한 기사 타이틀만 보고

작고 디테일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로 보지 않으니

생각도, 삶도 단순해졌다.


단순해진다는 건

양날의 검 같다.


단순해진다는 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는 거다.


보기 불편한 건 안 보면 된다.


단순해진다는 건

외로워진다는 거다.


보기 싫은 것들을 피해 다니다 보면

어느새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다.


단순하게 산다는 건

나의 욕망을 절제하여

군더더기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산다는 건

결핍과 부족을 고급지게 포장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도 난

'단순'이라는 검의 날카로운 면에 살갗이 베이기도 하고,

무딘 면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면서

이 칼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뇌한다.


불편함과 외로움 사이에서 ,

자기 절제와 자기 비하 사이에서

고민만 하다가

또 하루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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