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으라

by eunice 유니스


날마다 전쟁터와 같았던 어린 시절,

가끔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죽을 수 없다면 차라리

눈도 멀고, 귀도 멀고, 말도 못 하게 해 달라고

신께 기도한 적도 있었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식겁할 만한 기도이지만,

뭣도 모르던 어린 시절

그때의 나는 그만큼 절박했고 고통스러웠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형제 4명 중 3명이 자살을 함으로써

어린 시절부터 늘 죽음이 그의 곁에서 맴돌며

깊은 우울과 고독과 고통 속에서 지내왔다고 한다.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죽음과 직면하기 위해

그는 전쟁터에 뛰어들었다가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후에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총에 맞았다. 죽음이 두려웠다. 이제 나에게는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생겼다. “


살고자 하는 갈망은 사실

죽음에 대한 열망보다 더 강렬하다.


삶을 살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 앞에서는

삶의 의미나 가치, 존재 이유 등의 질문은 사치스럽기만 하다.


‘ 나는 지금 이 순간 숨 쉬며 살아있다.’ 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온 몸의 세포가 감각하고 있는 이 순간보다 더 경이롭고 황홀한 순간이 또 있을까..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구석진 곳에서도

생명은 피어나고

온갖 비바람에도

꽃망울을 터트리려 온 힘을 다 하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처럼


우리도 그 누가 보아주고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그리고 ‘삶은 곧 고통’이라는 대명제 아래에서도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 ( 에스겔 16장 6절 )




사진출처 :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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