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트 파크를 걸으며, 한국을 떠올리다
오늘 오전에 잠시 자리를 비우고 브라이언트 파크를 걸었다. 사무실에서 불과 5분 거리지만, 생각이 복잡할 때 또는 마음을 정리 하고 싶을 때 마다 찾게 되는 작은 피난처 같은 공간이다. 잔잔한 바람,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도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여유. 그런 고요한 순간 속에서 오늘은 문득,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이 떠올랐다.
비록 몸은 뉴욕에 있지만, 마음은 늘 한국을 향해 있다. 특히 지금처럼 정치적 전환기와 불확실한 세계 정세가 겹치는 시기엔,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질문이 더 깊게 다가온다.
대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은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지만, 오늘은 대한민국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조심스럽게 나누고자 한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 성장 둔화, 기술 패권 경쟁 속 G2의 압박, 지정학적 리스크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다시 말해, 단 1분 1초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시기라는 뜻이다. 공격적인 그리고 보다 적극적인 전략으로 전환한 미국, 복잡하게 얽힌 이웃 국가들과도 정면으로 마주하며, 우리만의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무엇보다,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강점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는 과학기술이다. 우리는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기술 인프라와 인재 풀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고유한 자산을 전략적인 투자와 실행으로 이어간다면,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
이제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생존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기업들이 한국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도록 판을 키워야 한다. 기술력 있는 창업가들이 국내에 머무르면서도 해외 시장을 겨냥하고, 세계 자본과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과 투자 환경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의 스타트업 관련 예산과 지원 정책도 보다 전략적으로 집중되어야 한다.
사실 한국은 이미 GDP 대비 R&D 투자 비중 세계 1위 국가다. OECD 기준 2023년 수치는 약 4.9%로, 이스라엘, 스웨덴, 미국을 앞선다. 하지만 양적인 투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 대부분의 R&D가 대기업 중심의 단기 성과 위주로 집행되고, 기초연구나 스타트업, 중소기업으로의 연결이 부족하다. 정부 과제 역시 부처별로 파편화되어 있고, 도전적 과제보다는 안전한 과제에 쏠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는 단순한 투자 확대가 아닌, 성과 중심의 전략적 배분과 민간–공공–스타트업 간 유기적 연결, 그리고 기술의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구조적 리디자인이 절실하다.
또한, G2를 비롯한 글로벌 강대국들과의 정면 경쟁이 중요한 과제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는 한국만의 전략적 니치(niche)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분야에서는 무리한 추격보다는, 전 세계 공급망 속에서 ‘한국 없이는 안 되는’ 고유한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 즉, 특정 소재·부품·장비, 인공지능 반도체, 정밀 제조공정, 로봇 부품처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해, 전체 가치사슬(value chain)이 형성되기 위해 반드시 한국의 참여가 필요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수출 경쟁력을 넘어서, 국가 안보와 외교적 협상력으로도 연결되는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의 바탕에는 사회 통합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 사회는 너무나도 깊이 갈라져 있고, 가끔씩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더욱더 이 골이 깊어지는 게 안타깝다 (물론 이렇게 않은 나라를 찾기는 힘들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진실과 신뢰의 기준이 모호해진 시대에 사람들은 중간 지점보다는 각자의 진영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분열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공통된 목표 앞에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정부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혁신과 성장, 그리고 통합. 이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고 오직 그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함께 길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