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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Jun 29. 2020

분유 포트 40도의 마법

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기분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업텐션, 기분 좋음의 최고치를 찍었다가 또 어떨 때는 불쾌함의 최저 바닥 끝을 찍어서 심연을 향해 가라앉는 느낌일 때가 종종 있는 것. 날씨로 따지자면 한여름 sweltering hot, 무더위의 최고조에서 한겨울 freezing cold, 얼어 죽겠는 추위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거다. 기분이 좋을 땐 컨디션이 100을 찍는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상한 이유들로 기분이 나쁠 땐 상온 그 이하로 떨어져 버리는 마음이라니. 하루는 '조'였다가, 하루는 '울'의 영역. 기분이란 녀석, 조금은 어정쩡한 온도 속에서 적당히 온순하게 길들여지면 좋을 텐데.


아기가 딱 분유라테 드시기 좋은 온도. 40도.


분유 포트, 육아를 하면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템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걸 꼽겠다. 아기가 먹을 분유가 적당한 물의 온도에 녹아 섞일 수 있도록 온도를 맞춰주는 똑똑한 아이템. 분유 Formula 버튼을 눌러주면 물이 한번 팔팔 끓어올랐다가 이내 적당한 40도의 온도로 맞춰진다. 아기가 태어났을 4월 무렵이나 한여름을 달리고 있는 요즘 같은 때나 바깥 날씨 온도가 몇 도를 찍든 이 포트 안의 물은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거다. 스타벅스 커피도 식어버리고 나면 그 홀짝이는 맛이 영 아닐 때가 있는데 언제나 적당한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 '항상성'이 갑이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지 않으니 믿고 먹일 수 있다. 늘 언제나 어제와 같이 오늘도, 내일도, 딱 40도의 온도로.


갓 80일 아기. “엄마의 온도 감각을 오늘도 믿어보겠어요.”


하루는 깜빡하고 '분유' 버튼을 눌러두질 않았던 적이 있다. 아기가 맘마 먹을 타이밍에 적당히 좋은 40도로 물이 식혀져있었어야 하는데 뒤늦게서야 그 버튼을 누른 것. 아기는 슬슬 배가 고픈지 보채기 시작하는데 물의 온도는 57도 정도까지밖에 식질 않았다. 평소보다 뜨거운 물에 분유를 타고서 급한 대로 찬물에 병을 대고 식혀보는데 생각만큼 빠르게 온도가 내리질 않았다. 손등에 똑 한 방울 흘려보니 여전히 뜨. 겁. 다. 어른의 촉감으로도 뜨거운데 아기는 더더욱이 뜨겁게 느껴지겠지. 5분여 정도 빠르게 병을 쥐고 흔들었다가 수돗물에 병을 흘려두었다가 이래저래 마음 졸이다가 어느 정도 식었겠지 싶어서, 아기의 입에 병을 물려본다. 결과는...? 역시나.


으앵!


으앙. 이건 아니잖아. 내가 먹던 온도가 아니잖아!


5분, 10분 이래저래 손을 놀려봐도 온도는 딱히 떨어지지 않았던 것. 우유병이 반가운 나머지 덥석 젖병 꼭지를 물었으나 평소보다 뜨겁게 조제된 식사에 아기는 자지러지고. 아기 울음소리에 놀란 나도 안절부절못하고. 온도만 평상시와 같이 맞춰져 있었다면 완벽했을 한 끼 식사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 온도가 조금이라도 더 뜨거웠다면 입천장이나 혓바닥을 데었을지도 모를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그날의 교훈. 아기가 배고프다고 아무리 보채더라도 온도가 정확히 40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섣불리 아기 밥상을 차리지 말 것. 만들어둔 시간이 지나서 한껏 식어버린 분유도 골칫거리지만 제 온도를 찾지 못한 채 잔뜩 '열' 받아있는 분유는 더 위험했다. 물론, 온도 문제로 속을 앓기 전에 분유 포트가 늘 '40도'를 잘 유지하고 있는지 틈틈이 확인해두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두며.


딱 적당한 그 온도로 조제해줘야 하는 미션. 매일 부지런히 같은 온도를 유지해주는 분유포트 기능이 아니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분유 포트의 '40도 유지' 기능에 매일 있는 힘껏 기대 살아가는 나날들. 찬물을 들이붓든, 이미 한번 끓여져 있는 물을 덧대든, 결국엔 항상 같은 온도 40도를 유지해주는 똑똑한 육아템.


아기의 분유에 이미 완벽하게 맞춰져 있는 물을 섞어내며 생각한다. 마음에도 온도 유지 기능이 있다면 참 좋겠다고. 어느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려서 이도 저도 아닌 하루를 꺼이꺼이 살아내는 '울증'의 하루도 별로고, 너무 뜨겁게 끓어 올라서 '조증'만으로 하루를 이어가는 것도 과하다. 조와 울, 적당한 경계를 서성이며 적당히 유쾌한 정도로 스물네 시간을 살아낼 수 있다면 참 바람직할 텐데. 그렇다면 우울함에 고개 숙이고 침잠하는 나날도, 원인 모를 엔도르핀 과다 섭취로 너무 들뜨는 날들도 휘휘 두루두루 멋들어지게 섞여서 우아한 하루를 만들어낼 텐데.


엄마도 마음의 온도 맞춤기능 버튼을 꾹 눌러보세요


분유 포트의 '온도 유지' 버튼을 꾹 누르듯, 오늘 하루 마음의 온도 버튼을 누르며 시작하자고 다짐해두기. 그 어떤 일에 화가 나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그 무언가에 들뜨더라도 딱히 별일 아니라는 듯이 차분히 가라앉히자고. 너무 우울해서 영 경쾌함과는 거리가 먼 하루 같더라도 적당한 온도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하루의 분위기를 띄워보자고, 마음의 눈금을 맞춰두기.


언제나 같은 온도의 미온수 덕분에 아기가 기분 좋게 배를 불리듯, 나도 같은 온도를 유지하다 보면 마음에 그 언젠가 딱 좋은 포만감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너무 배불러서 괴롭지도 않은 너무 굶주려서 짜증 나는 것도 아닌 딱 좋은 그 순간을 찾을 거라고 기대해 보면서.



내마음도 영하 14도를 찍고난 뒤 싸늘하고 마냥 건조해지지 않도록. 너무 활활 끓어올라서 94도의 열기에 금방 지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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