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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Aug 27. 2020

막막한 글쓰기

겁없이 나도 잘 쓸 수 있다고 할 땐 언제고  

정말 브런치 작가라는 것은 겁 없는 도전이라는 것이 맞았다. 작가가 되었다며 여기 저기 떠들었지만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되면서 과연 내가 무슨 글을 써야 하는가와 이 글을 써도 되는가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타인의 글들을 읽기만 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책을 찾아 넘겨 보았다. 다들 그 고충이 크구나. 그런데 그럼에도 그럴수록 그들은 다양한 글들을 써내려 갔구나.  


발행되지 않은 글 하나가 발단이었다.

날 것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글. 남편과 별 것도 아닌것으로 다투고 난 후 비교적 담백하고 객관적으로 그 상황을 담아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객관적인 척 하는 다분히 내 주관으로 가득찼고 담백한 척 했지만 짜고 맵고 시금털털한 막무가내의 글이었다. 그 글을 발행했더라면 어땠을까? 남편은 아주 이상한 남자가 될 것이 뻔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사람이긴 하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글쓰기의 시작은 재미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조금 힘은 들지만 하나의 완성된 글이 되면 그저 좋았다. 내 글을 좋아한다며 애독자를 자처하는 몇몇의 지인들의 존재는 이 취미를 조금 더 꾸준히 해나갈 동기가 되었고 우연히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는데 글을 써 가려니 그것도 참 재미가 없었다. 독자가 없을 때 무언가 힘이 빠지는 허무함으로 몇 주를 버텼다. 그리고 유명(유명의 기준은 제각각이나 그래도 어느 정도의 완성된 책 한권을 출간한) 작가가 되어 스르르 자연스레 알려지기를 바랐던 마음과 달리 몇몇의 지인들께 나의 브런치 주소를 보내어드렸다. 그리고 지인들을 중심으로 하나 둘 구독자가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을 수 없게도 내가 쓴 글 하나가 1만뷰를 넘는 기적을 경험했다. 큰 아이의 로맨틱한 면을 써 내려간 글이 브런치 추천 글에 올랐던 모양이었다. 새 글을 써도 50도 안되는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별안간 몇 천의 조회수와 갑작스런 라이킷의 쇄도, 처음엔 우와 내 글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다니 별 생각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 한 번의 기분 좋은 경험 이후 시간이 갈수록 그 다음 글을 쓸 용기가 줄어들었다.


내 글에 대해 주저하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통해 나를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의도치 않은 잘못된 표현과 같은 것도 신경에 쓰였고 아직 내 글은 많은 사람들이 읽을 만한 그럴 깜냥이 안되는데 그것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자존감, 자신감 따위의 감정들로 잘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겼던 내가, 보여지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면보다 이리도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한가? 나와 내 울타리 근저에 사람들과만 나누고픈 은밀한 구석이 많은 것인가? 아무튼 글이 갖는 매력만큼이나 막연한 조심스러움이 계속 커져나갔다.  



그 과정에서 읽었던 다른 책,  

다른 작가들의 글은 

어떻게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만들었는가?



김신회 작가의 신간 '심심과 열심'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구석을 느끼고 또 대단함을 느꼈다.

1년에 1권씩, 총 13권의 에세이집이라니. 그녀가 쓴 여러 꼭지 들 중에 가장 많이 와 닿는 것은 개나 소나 쓴다였다. 그 개와 소 중에 하나가 될 나, 그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와 그 날의 감정들을 담아내는 그런 평범한 에세이스트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녀가 쓴 글은 재미도 있지만 용기도 가득 불어넣어주기에 충분했다.



같은 이유로 나를 포함해 더 많은 개나 소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 독자로서 더 다양한 에세이를 많이 읽고 싶다.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책을 통해 알아 가고 싶다. (중략) 에세이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에세이스트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쓸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 쓰면서 살고 있다. 개나 소나 쓸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평등하다는 것, 그것이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평생 개나 소로 불릳라도 부지런히 에세이를 쓰고, 더 많이 읽을 것이다. 개나 소나 만세다. 에세이 만세다.

심심과 열심 ㅣ 김신회  p.128



김정선 작가의 '열문장 쓰는 법' 또한 내겐 큰 자극이었다. 교정 작업을 오래 해오신 분이어서 그런지 실질적인 여러번의 글쓰기 연습 과정을 거치면서 문장이 탄탄해지고 군더더기가 사라지는 더 나은 글로 바꾸는 것이 하루 아침의 노력만으로는 안되겠구나라는 생각에 이르자 생각없이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담기만 하는 내가 과연 여러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더 주저하게 되기도 했다.



지난 주말 나는 '마녀체력'의 이영미 작가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우리 지역에서 유명 작가의 초청 강연을 듣는 것은 보통 흔하지 않은 일이다. 도서관 개관 10주년 이벤트로 야심차게 준비한 모양인데 코로나의 확산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지난 토요일 이 행사를 마지막으로 도서관은 다시 휴관에 들어갔다. 발열체크와 손소독, 마스크 착용과 거리 두기 좌석 배치 등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역을 바탕으로 두 시간 가량 밀도 깊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책에서 거의 대부분 읽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책 밖에서 그녀가 이야기 하는 것을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고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그녀로 인해 삶이 달라졌음을 고백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나 아닌 다른 분들 가운데에서도 그런 변화를 경험하신 분이 여럿 있는 것 같아 작가님이 부럽기도 했다. (책 출간시 고려할 3T(5T)의 정보도 유용했다)


위안이 되어 준 또 다른 책은 이다혜 작가의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였다.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발전시켜 나만의 글을 만들고 사람들의 공감까지 얻는 방법을 차근히 일러주는 이 책, 감사했다. 나와 같은 일반인 작가의 고유한 경험이 또한 경쟁력이 될 수 있고, 관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변화의 중심에 내가 서 있는 듯한 느낌도 얻었다.  

글을 읽는 방식, 쓰는 방식, 파는 방식이 다 변하고 있는 중에 인쇄 매체와 출판업에 한 발씩을 걸치고 일을 하는 나는 그 변화가 궁금하고, 기대되며, 근심된다.
"글로 보이지 않는 것도 글이며, 글로 보이는 것은 글이 아니다."
읽는 사람 없이도 글은 수없이 퍼블리시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이런 상황에 글쓰기는 부이 될 수 밖에 없고 일반인 작가의 글은 점점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글을 잘 쓰는 능력이나 전문성만큼이나 고유한 경험이 독자들 사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권위와 문자는 분리되는 중이다. 읽고 쓰기, 혹은 쓰고 읽기는 이전 어느 때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ㅣ 이다혜 [에세이 시대의 글쓰기 ]



막상 쓰려니 별 다른 할 말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손가락은 움직이고 활자는 남았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내가 익히고 배운 것을 집대성(그럴만한 지식도 없지만)하여 엮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타인의 생각과 삶을 바꾸려는 거창한 것도 아닌데  그냥 너의 오늘 하루는 그랬구나 하며 고개 끄덕할 수 있고 거기에 재미가 조금 있고 공감이 가면 더 좋겠다 싶은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갑작스런 글의 노출은 막연한 두려움을 몰고 왔고 막막해짐을 퍽이나 오래 느꼈지만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 내 글의 호흡이 내 마음대로이고, 문장과 문장의 연결도 뜬금 없을지라도 그것이 나이다. 이리 저리 생각이 산만하게 움직이는 글, 그것이 내 글인 것을 


 

누가 내 글을 읽더라도 이젠 그냥 당당할 수 있고,

넌지시 재밌게 읽으셨어요?하고 물을 수 있는 그런 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에세이 속에 등장할 여러 사람들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한다.




여보, 나의 삶에 5할은 그대야.

우리가 지지고 볶는 여러 일들은 지금껏 친정에만 실시간 중계되었지만 앞으론  많은 사람이 읽게 될거야. 그러니 부디 좋은 소재의 글감만 내게 주길 바라. 사랑해. 내 아들과 딸아, 너희들의 이야기들도 내가 쓰게 될 수 많은 글의 소재가 될테니 그대들의 하루들도 소중히 잘 살아내렴. 아빠만큼이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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