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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Sep 24. 2020

버릴 가방은 없지만 샤넬백을 버린 날  

 옷은 껍데기다. 그러나 껍데기는 나의 정체성이다.

어제 오후 도서관에서 최유리 작가의 <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라는 책을 찾아 읽었다.

우리 학교 근무 4년 만에 처음 자리잡게 된 중앙 교무실에서는 자기 계발이 한창인 다양한 동료 선생님들이 계신데 그 중에 나와 같은 30대에 비슷한 삶의 과정을 버티고 또 즐겁게 살아가는 K선생님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 하루에 몇 분은 꼭 오늘의 영어공부와 지난 하루의 복기를 함께 나누곤 한다. 그녀의 독서 목록에서 보았던 책이었는데, 눈 앞에 보였고 제목이 참 그럴 것이 샤넬백은 없는데 대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었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대략적인 글의 목록과 소제목을 넘겨보고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 ~ 이 책 리뷰로 한줄 코멘트 부탁해요."


고민하던 그녀는,


"옷은 껍데기다. 그러나 그 껍데기는 곧 나의 정체성이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시 물었다.


"그럼, 이 책 읽고 옷 입을 때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음, 옷 입는 스타일이나 취향이 그렇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내 기분이 달라졌어요."



서울대 출신의 고등학교 기간제로 근무했던 그녀가 대학원을 진학하고 박사논문을 쓰다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해내게 해 준 글쓰기, 진짜 꿈은 옷을 잘 입는 것이었다는 그녀의 이야기. 책을 읽고 세바시 강연을 보다보니 자연스레 그녀의 스타일링에 눈이 갔다. 흰 셔츠에 소매를 접어올린 감색 자켓, 가로스트라이프 블랙 H라인 스커트, 흰 스니커즈, 메탈 시계, 앞머리 없는 블랙 단발 펌, 아우라랄까 분위기랄까 그녀가 추구하는 조용한 말괄량이의 당차고 자신있는 모습이 이런 것인가 하며 그녀의 인생, 속 깊은 이야기들로 가득 채운 15분을 나 또한 집중하며 내게 의미있는 시간으로 바꾸려 귀를 기울였다.


세바시 강연 중 제일 좋았던 문장


오늘 아침 나는 연한 핑크색 샤스커트에 검정브이넥 니트를 입고 검은색 플랫을 신고 늘 패션의 완성으로 애플워치를 장착하고 출근했다. 화장은 평소와 같은 바탕에 오늘 색조를 빼고 오렌지빛 퍼즈 틴트를 바르고 볼에 살짝 문질러 생기만 준 채로


교무실 드레스코드라는 것이 있을까?

나는 어떤 스타일로 아이들 앞에 서는가?

최근에 입었던 다양한 프릴 원피스들과 어제 입었던 초5의 피아노 콩쿠르룩 같은 옷은 어떻게 괜찮은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옷들인데 이건 교무실 드레스코드라는 것에 맞지 않는 것인가? 내 나름의 기준을 통과한 옷이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비춰지는가? 딱 그런 정형화된 교사룩이라는 것이 있을까?


단정하고 내 피부에 잘 어울리는 베이지와 파스톤 계열의 색감에 내 취향의 옷을 즐겨입는 편인데 나의 의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과 질문이 있어서 순간이 있기도 해서 몇 번은 멈칫하기도 했다.


"비싼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면 열등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소비주의, 패션 트렌드에 뒤처지면 패자 취급하는 담론, 외모와 패션, 연애와 결혼 앞에서 여성이 취해야 할 태도를 강요하는 편견과 허세"


책 표지에 적힌 글은 또 다시 나를 생각해보게 했다.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한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저런 것에 함몰되어 있지 않아라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럼에도 자유롭지는 않기도 하고

패션은 결국 나의 껍데기이면서 껍데기가 곧 내가 되기 때문에 그녀가 말하는 정체성을 찾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느낀다.


내가 매일 입고 들고 신는 것들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나한테 잘 어울리는 예쁜 것을 찾았고 또 한편 편안한 것을 추구했는데 나는 대체 어떤 가치로 옷을 입었던 걸까?

매일 아침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손에 집히는대로 골라 입었고 그냥 넘겼던 오늘은 뭐 입지? 와 같은 주제로 그녀는 이렇게 큰 변화를 갖게 되고 인생이 바뀌다니 그리고 그 미지의 분야를 개척해 나아가고 있다니 멋졌다.


대체로는 끄덕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다면 내면과 외면이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법 중에 좋았던 것들은 생활 속에 지키고 싶어 따로 적어보았다. 다음의 것들이다.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이것이 생활이 되면 근사하게 나이들어 있는 내가 될 것도 같아 느슨해질 때마다 이따금 이 목록을 찾아봐야겠다.



1. 근력운동은 꼭

2. 샤워 후 바디로션과 오일은 필수

3. 짙은 화장보다 빛나는 눈

4. 예쁘다 보다 멋있다!

5. 수다보다 글쓰기

6. '왕년에 내가'보다 '앞으로 내가'

7. 혼자놀기에 익숙하기

8. '나이다움'보다 '나다움'

9.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질 것

10. 자기 자신과 즐거운 결혼생활


 

이 책을 읽고 보니 찬 바람이 부는 것 같고 가을 옷을 사고 싶은 것은 왜인지 작가님은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진정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기를 바랐겠지만 결국 나는 퇴근 후 좋아하는 쇼핑몰을 들여다볼 것 같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하나 담았다.


샤넬 백은 없지만 나도 오늘 샤넬백을 버렸다. 이젠 좋아하는 쉬폰원피스 대신 다양하게 매치해서 여러 스타일링이 가능할 옷들을 사야지. 그보다 먼저 정리해서 엄청나게 쌓여있는 옷들을 얼른 제 갈길로 보내야겠다. 올 겨울 방학엔 옷장 다이어트부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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