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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사임당 May 09. 2021

40살 남편에게 쓰는 편지

경) 불혹 입문 (축  


가끔은 달달하고
어쩔 땐 시큼해도
그래도 먹고 싶은 맛,
그런 결혼생활이
향후에서도 이어지길 바라외다.



여보, 그대가 벌써 불혹의 나이가 되었소. 나를 처음 만나 연애하던 때의 나이가 서른이었으니 벌써 우리의 세월도 10년이 되었구나.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말처럼 여보도 강산만큼 시대처럼 5G 속도로 참 많이 변했지요. 훗날 다시 읽어볼 테니 이렇게 조금 낭만 가득한 어른의 감성을 담아 마음을 써내려 갑니다. 나는 정말이지 당신이 마흔이 되면 우리의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삶에 아무런 별다른 차이도 없는 것 같아요. 이것은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아주 좋지 못한 것일까요?  아무튼 요즘도 그대는 엉뚱한 소리를 잘 해대며 나를 골려 먹고 그러지요. 어제도 그랬잖아요. 오늘 1년도 더 지나 참 오랜만에 10만 원이 넘는 비싼 숙소에 여행을 간다며 세차를 해준다고 하더니 따라나서라고 했지요. 세차비 아깝다고 차 문 한쪽면에는 거품칠도 안되었는데 돈을 넣지 말라하더니 열심히 걸레질하는데 핀잔을 주었지요. 누누이 말하지만 그렇게 잔소리하고 꾸지람 할거면 2만 5천 원 더 벌거나 아껴서 스팀세차를 해주면 좋겠어요. 여보.


여보, 어제 집게로 당신의 흰머리카락을 약 서른 가닥을 뽑은 것 같아요. 잘못해서 검은 머리도 약 여덟 아홉 가닥을 뽑았어요. 아무튼 그런데도 아직 뽑아야 할 흰머리가 많았어요. 당신이 늙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것도 같지만 웬만하면 염색을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말에 당신의 마흔을 기념하기 위해서 동네 사진관에서 흑백사진을 남겼습니다. 생각보다 좀 비싼 것도 같았는데 스티커 사진과 같은 것이 아니니 이 또한 추억이겠지요. 우린 조금 나이가 든 것 같고 그 예쁘던 아이들은 조금 못나게 나왔어요. 당신은 한결같은데 나는 팽창했다가 가늘어졌다가 수도 없이 부풀고 수축하기를 반복하네요. 그래도 사진 보신 우리 어머니 말씀에 우리 레아는 너무 예쁘다고 했으니 그 말씀 아로새겨서 가슴에 담아두시길 바랍니다. 제가 곱게 나이 들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세요.


다시 여보, 앞선 편지 글의 절반은 농담이 가득 담겨있지요. 지금부터 저 진지합니다. 여보가 12년도 더 된 제 차를 운전한 지 어느덧 팔구 년이 된 것도 같아요. 이런저런 교통사고가 여러 번 있었고 낡기도 하여 작년 봄부터 아마 당신 차를 바꿔주겠다는 일념으로 1년을 살았습니다. 다들 주식을 하기에 종잣돈 만들어 나도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여러 책에서 말하는 대로 긍정의 기운과 해빙의 기적을 모두 담아 벤츠 지바겐인지 뭐신지 아무튼 그 차를 끌어당겨 보았는데 남들이 다 수익이 나더라도 나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네요. 다행히 더 주식 계좌에 넣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여 다른 통장에 차 바꿀 돈을 조금 모아보았는데 지바겐 바퀴 두 짝 정도 살 수 있는 금액인 것 같아요. 여보 그 차가 지금 안 굴러가는 것도 아니니 조금만 더 참아보셔요. 한 십 년이면 내가 필시 투자 성공을 하든 N 잡러 가 되어서 당신 50살 되기 전에는 좋은 차 타게 해 주겠소. 그런데  쓰다 보니 이상한 것이 내가 왜 굳이 시키지도 않은 이런 말을 해서 약속을 하는지... 아무튼 호강시켜줄게요 여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지 않아도 작은 집 짓고 우리가 꿈꾸는 노후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봅시다.



이제 내 편지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여보. 지금 저 침대 위에서 셋이서 오붓한 시간인데 이 타이핑이 끝나면 함께 초는 없지만 생일 노래를 부르며, 그래도 먼 훗날 마흔의 그대 생일이 그리워졌으면 합니다. 우리 둘이서 좌충우돌 아이 키우며 정신없이 살아낸다고 사랑이며 낭만 잊은 지 노래이지만 다들 그러하듯 호적 메이트로 이어져 우정과 의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연애하듯 가끔은 달달하고 어쩔 땐 시큼하고 그래도 먹고 싶은 맛의 그런 결혼생활이 향후에도 이어지길 바라외다. 뭐 와인 한 잔 합시다. 여보. 사랑해요. (나랑 사니까 좋지?)  



추신 : 그리하여 40살 생일을 맞이한 그대를 위한 선물은 바로 이 편지요.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감감한 호텔행이오. 내일 아침 날 대신하여 아들이 데워줄 CJ 미역국밥이며, 두 아이 용돈으로 오기 전 이마트 이니스프리에서 직접 고른 세럼 및 수딩젤 등등의 기초화장품이오. 아마도 요즘 난리 난 피부 트러블에 딱 맞는 선물이 아닌가 싶고, 예산 초과했는데도 윤서가 당신 무릎 아프다고 우겨서 고른 시프쿨 파스도 하나 덤으로 얹었소.


2021년 5월 3일 월요일 그대 불혹의 날 이브에

아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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