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 공모전 출품, 나는 집필위원이 되었다.
지난 여름부터 올봄까지 근 1년을 고생한 작업이 끝났다. 우리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공부해서 중학교 아이들이 쉽게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교재를 썼다. ‘인물, 사건, 장소’라는 공통의 요소에서 내가 담당한 지역에서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세 지역을 다루었다. 방대한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고, 전체적인 틀을 맞추는 것도, 서술에 있어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과 집필자의 주관을 드러내는 것과 독자의 판단을 이끄는 서술까지, 교과서에 준하는 공식적인 교재를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선생님들과 공동 작업이었기에 다른 분들과 협의를 할 때면 나의 부족함이 여실히 느껴져서 그 또한 이겨내야 했다. 8~9차례의 대면 회의가 있었다. 수도 없는 제출 마감 기한이 있었다. 원고 제출, 사진 촬영본 제출, 삽화 검토, 지도 검토, 검토와 편집과 수정과 제출, 윤문을 거치고 다시 수정했고 감수를 거쳐 또 다시 수정했다. 누군가 이 작업을 다시 하라고 하면 나는 다시는 절대 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두 손 두 발 들만큼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나의 부족함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만큼 배워가는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말로다 표현 못할 고통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능력이 안 되는데 자신감이 넘쳤던 것인가, 겁이 없었던 것인가, 아마도 둘 다였다. 어리석었다. 시간이 흘러 5월 중순에 원고는 책의 형태로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 있는 모든 학교로 보내어졌다. 제대로 된 홍보가 없었고 출판 기념행사도 없었다. 덕분에 우리 학교에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동아리 아이들과 기념 삼아 이 교재를 활용해서 우리 지역의 독립 운동에 관해 공부했다. 내가 만든 수업 활용 자료를 이용해 엽서를 디자인하고 편지까지 써 보았다. 워드 클라우드와 워드 아트를 이용해 새로운 웹디자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했다. 도교육청에서 이런 활동을 찍으러 우리 학교를 방문했고, 덕분에 예정에 없었으나 마음 한 켠에 꿈꾸고 있었던 아이들과의 현장 답사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열흘 남짓 시간이 흐르고 도교육청 유튜브 영상에 우리의 모습이 업로드되었다.
지나고 보니 모두 성장이었다. 내가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고통도 배움도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 어떤 문장도 쉬이 쓰여진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역사교사로서 학생들이 읽고 배울 수 있는 교재를 써보았다는 처음 써 본 경험, 지치는 날들이 많았지만 결국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것도 글쓰기였다. 처음은 어렵고 다음은 쉬우랴만 그래도 다시 다음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때는 더 후회 없이 잘할 수 있겠지?
(물론 나 스스로 다시 하고 싶어서 시작하는 일에 한해서 말이다. 절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어야 한다.)
5월 중순 앞서 언급한 책이 학교로 오고 며칠 후 다시 학교로 16권 남짓의 책이 왔다. 이것은 정말 내가 만든 책. 진짜로, 내 인생 첫 책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것 또한 내 책은 아니다. 100일이 넘는 동안 큰아이의 일기를 열심히 받아쓰기해서 엮었으니 책의 9할은 아이다. 이 책 또한 공저였다. 엄격히 따져 나는 받아쓰는 사람이었고, 조금 더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편집자였다. 108쪽 분량의 알록달록한 정신없는 책이다. 글보다 디자인 편집에 더 공을 들인 사진 더 많은 책, 그런데 의외로 글도 많은 책, 얇고 작은 책을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 읽으면 재미있다. 아이 특유의 순수한 생각과 동심, 그것은 읽는 사람을 스스로 미소 짓게 만들기도 하고 또 철학적 사색을 이끌기도 했다. 아이가 불러주는 생각과 문장을 받아 쓰며 이 아이가 작가가 되어도 좋겠고 그냥 어떤 일을 하든 이렇게 자신만의 글을 차곡차곡 써 내려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ISBN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책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은 분들에게 드렸고, 몇몇의 독자분들은 다양한 형태의 선물과 응원을 꼬마 작가님께 보내주셨다. 정말 아이를 키우면서 지금까지 했던 그 어떤 일 중에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이 일이었다. 제목은 엄마의 받아쓰기다. 내가 노쇠한 할머니가 되었을 때 이 아이가 내가 말하는 문장을 글로 담아 ‘아들의 받아쓰기’로 다시 엮는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그리고 아직 글쓰기는 진행중이다. 사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여기에다 글을 쓰는 이유는 똑똑한 브런치 알림이 내가 60일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고 작가님의 글이 보고 싶다고 재촉했기 때문이다. 그간 또 다른 프로젝트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그냥 한 번 해보는 일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도전의 이름으로 공모전 글을 제출했는데 덜컹 인문학 도서 집필위원으로 뽑혔다. 8인 중에 한 명이 내가 되었다. 처음에는 엄청 기분이 좋았다. 내 정신없이 뻗어가는 괴상한 글을 무슨 기준으로 뽑아주셨는지 한편 의아하기도 했지만 심사를 통해 선정되었으니 인정받은 것 같아 꽤 오랜 기간 기분이 좋았다. 글 쓰는 일은 어렵지만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글을 다듬는 것도 글에서 군더더기를 찾고 빼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지친다. 어느 하나에 열중하게 되면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글쓰기는 좋지만 글쓰기는 힘들고 글쓰기는 잘하고 싶지만 그렇게 욕심낼수록 글은 이상해져 있었다. 주제가 정해지면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궁리하는 때가 제일 좋다. 머릿속에서 다양한 글감들이 떠다닐 때가 좋다. 그것을 글로 다 담아내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 시끄러운 키보드의 움직임이 쭈욱 삭제 버튼과 함께 사라지고 다시 백지가 남는 순간, 버리기 아까워 실행 취소를 눌러 저장한다. 뭐하러 저장해뒀을까 싶은 습작 1, 습작 2의 형태로 저장된 글들… 그런 작품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차마 공개는 하지 못하고 수정도 하지 않은 채. 1년 전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는 무슨 생각에 한 번만에 휘릭 써서 맞춤법 검사만 한 채로 그대로 글을 발행했을까? 정말 무지했고 자신감도 대단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그런 글을 써본다.
오랜만에 내 마음대로 휘리릭 글을 써본다. 이런저런 고민 없이 그냥 쓰고 싶은 대로, 본래처럼 일기를 쓰듯 썼다. 그리고 늘 그랬듯 그런 순서대로 완성도 낮은 이 글을 발행할 것이다. 워드 창에 깜빡이는 커서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몇일만에 한 번씩 글을 쓰는 게 겁내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매일 몇 줄의 문장이라도 글을 다시 써보자고 다짐한다. ,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이후 이래 저래 계속 글을 쓰게 되었고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출간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요즘도 원고를 쓴다. 퇴고의 고통도 함께 한다. 쓰는 것도 다시 읽는 것도 수정하는 것도 다시 읽고 또 수정하는 것도 싫다. 그런데 완성 원고를 읽는 것은 재밌다. 누가 대신 해주면 좋겠는데 또 다른 사람이 하면 마음에 안든다. 아무튼 나라는 존재는 참 이상하다. 떨어질 수도 있으니 비밀로 삼켜두려다 타이핑을 하다 보니 쓰게 된다. 실은 지역 신문의 육아 공모전에도 마감일날 원고를 하나 투척했다. 브런치에 썼던 글을 다시 한번 더 다듬어 파일을 제출했는데, 7월 2주 원고 심사라고 했다. 상을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이지만 사실 이 또한 인정받는 글이 되면 좋겠다. 역시 욕심이 많다. 코로나 블루를 이겨낼 수 있는 삶의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글쓰기와 도전이다. 도전과 실패, 그 사이의 성장. 그렇다고 내가 대단히도 잘 쓴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스스로는 그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리니까 야, 너도 쓸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