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 적응의 징표, 책을 읽을 수 있는가
3월의 스물다섯 번의 날들이 흘렀고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간 비담임의 심리적, 시간적 여유가 좋았지만 품에 안기는 아이들이 참 그리웠다. 그래서 새 학교로 옮길 때 업무분장 신청서에 꼭 담임을 하고 싶다고 적었다. 담임만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학년 부장이 되었다. 동학년 담임선생님들과 같은 학년실을 쓸 수 없고,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전체 학급이 배치되었으며, 급식마저 2부제로 운영되어 선생님들과 협의를 하고 싶어도 어렵기만 하다. 그것도 중2다. 그 어떤 악조건에서도 꽃 피어야 하는 것은 꽃이 피니 3월의 시간이 잘 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달랬다. 새 학교의 낯선 공간들만큼이나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은 동료들과 아이들 속에서 동화되어 편안한 나날을 보내려면, 기존의 학교와는 다른 시스템과 환경에 적응해 버벅거리지 않으려면 결국 시간이 힘이 필요하니까. 나는 그걸 아니까. 그런데 흐르지 않던 그 시간에 있던 나는 막막했고,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는 아직도 부적응인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다. 내가 빨리 적응하고 싶을수록 마음과 함께 생활은 자꾸 흔들렸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3월 2일에는 한 시간의 입학식이 전부라 10시에 시작해서 11시 10분에 순차적 하교를 한다고 했다. 신청해둔 돌봄 교실은 12시 30분부터 입실이 가능했고, 첫날에는 급식 대체식이 제공되어 가정에서 먹고 오라고 했다. 그럴 수 없는 여건이라 돌봄 교실을 신청했는데 아이의 학교는 첫날부터 일하는 엄마의 설움이 밀려들게 했다.
"엄마... 3월 2일에 뭐해? 혹시 일 하러 가?"
"아니, 그날 쉬는 날이야."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도움을 들어줄 친정 엄마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둘째 아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기분 좋게 학교에 갔다. 우리 엄마는 아이의 첫 등굣길이라며 사진도 서너 장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아이가 담임 선생님 손을 잡고 들어가자 손을 한참이나 흔들어 인사를 해주셨을 것이다. 교문 앞에서 나누어 준 온갖 사교육 팸플릿을 받아 들고 아이가 점심으로 먹고 싶다던 충무김밥 가게에 걸어가 3인분을 포장해서는 아직 찬 바람을 맞으며 학교 앞에서 또 한참이나 기다리셨을 것이다. 주변에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 옆에서 이제는 묻지 않아도 할머니처럼 보이는데도 나는 애 외할머니라며 애 엄마는 일하러 갔다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무튼 교문을 짤랑짤랑 박자 맞춰 뛰어나왔을 아이는 할머니 품에 한 번 안기고 손을 잡고 걸어 집으로 갔다. 충무김밥을 먹고 간식도 먹었을 테지. 아이를 다시 챙겨 돌봄 교실에 보내준 엄마가 다시 전화가 왔었다.
"학교 다시 보내주고 나는 그만 간다. 애 기분 좋더라. 걱정하지 말고 일해라."
걱정 말라했지만 새 학년과 신입생의 1주는 수많은 준비물과 가정통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그냥 밥도 안 먹고 침대에 누워 자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학교 알리미와 가방을 다시 챙겨야 했다. 3월 1주라 그런 것이지 하면서 견뎠다. 그리고 3월 1주는 지나갔다.
문제는 코로나였다. 코로나의 상황이 3년째 지속되고 있지만, 2년을 쉬고 내가 담임이 된 2022년 3월은 오미크론 감염 확산으로 지역 감염 숫자가 매일 사상 최대치를 돌파하기 시작했는데 2월 말에 인계받은 우리 학급 내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었다. 첫 주에 동과 선생님의 확진과 갑작스러운 병가 등으로 대강이 쏟아졌다. 동과 우선이라는 원칙 때문에 하루 6시간 이상 수업이었다. 그로부터 정말 한 달의 시간 동안 아직은 나를 비켜갔지만 학급에서는 두 자리 수의 학생들이 확진과 격리와 해제를 겪어내고 있다. 어제 학급 내 두 명의 확진자 발생을 알려주었는데 우려스러웠던 대로 오늘 아침 의심증상을 보이는 아이 부모님의 연락을 받았다. 출석부가 하루도 깨끗한 날이 없고, 아이들 다 오면 찍겠다던 학급 사진은 올해 찍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까지 들게 하였다.
지금은 3월 4주 금요일 점심시간이다. 3월 3주 월요일 처음으로 학교 도서관에 가서 회원 등록을 했고 책을 빌렸다. 그리고 두 세장 펼쳐 읽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20분은 아이들과 감사일기를 한 줄 쓰고 책을 읽는다. 3월 4주 화요일 1교시, 6반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 4 분단 맨 앞에 앉은 여학생 책상 위에 놓인 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보고, 재밌으니까 잘 읽어보라고 건넨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자기가 너무 감명 깊게 읽은 소장 책이라며, 슬픔 주의 경고와 함께 아이는 이꽃님 작가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를 건네주었다. 퇴근 후 두어 시간 후 나는 눈물을 쏟았고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다음날 1교시 또 다시 그 반 수업이라 끝나고 젤리와 함께 대출도서를 반납했다. 작가님 글이 너무 좋더라며 말했더니 그 작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서 빌려 읽고 있는데 나 먼저 보라며 <행운이 너에게 다가가는 중>을 내 교과서 위에 올려주었다. 청소년소설이라 책이 잘 넘어갔다. 목요일 7교시 자살예방교육 시간에 영상을 보고 아이들 소감을 쓸 때 나는 마지막 챕터를 읽고 덮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려면 너무 쉽고도 간단하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며 그렇게 괜찮은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의 나에게 우영 엄마가 겹치지는 않는지 계속 나를 되돌아보며 학교와 집에 있는 나의 아이들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바라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책은 알고 있는 사실을 더욱 새롭게 느끼게 한다. 중2 소녀가 건네준 상처받은 중2가 주인공인 두 소설을 읽고, 상담주간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려웠던 중2 소녀와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도 되었다.
조금 전 금요일 4교시를 마친 아이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책 반납 기한이 다가오고 내일은 주말이니 자기도 읽어야 해서 책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선생님한테 책 빌려줘서 고마워."
아이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내가 새 학교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